절대 감사
우리 대부분은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감사하며 살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갈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이 태도나 과정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두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자녀들이 얼마나 성공을 했는지 등등 어떤 좋은 일이나 사건이 있을 때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좋은 일보다는 걱정하고 염려할 일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나만 힘들고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그래서 살면 살수록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힘들게 됩니다.
중요한 것을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가 아니라 내게 일어난 사건이나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마다 형편이나 처지 또는 겪어야 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은 다 다르지만 그 인생의 무게는 대부분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형편이나 처지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견디기 힘든 고난이나 형편을 잘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Viewpoint라는 표지판을 볼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멈추어 서서 바라보는 view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똑같은 경치도 어디에서 바라보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기도 하고 별 것 아닌 그렇고 그런 시시한 것이 되게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view가 있더라 하더라도 나쁜 Viewpoint를 통해 보면 그것도 별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무엇이 보이느냐를 결정합니다. 똑같은 view도 어떤 viewpoint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Viewpoint가 좋은 View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해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매우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같은 원리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view를 바꾸기 보다는 viewpoint를 바꾸는 것에 힘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세상의 조건이나 형편을 바꾸기 이전에 형편과 여건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우선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안정된 삶의 형편과 여건 때문에 믿으셨다면 우리는 곧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만족케 하는 완벽한 형편이나 환경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어떠한 삶의 형편과 처지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데 둔다면 우리는 어떠한 형편이나 환경에서도 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어떤 일에 대한 반응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감사를 합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감사를 합니다. 물론 이 정도도 할 줄 안다면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런 식이라며 감사할 일보다는 짜증내고 불평할 것이 더 많은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사람들이 다 친절하던가요. 나에게는 항상 좋은 일만 생기던가요. 그렇지 않을걸요.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해석과 적응의 문제입니다. 그럼 성경이 가르치는 감사는 무엇입니까? 자족입니다. 자족이 무엇입니까? 환경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만족해하며 감사하는 것이 자족이라는 절대감사 입니다. 이것은 반응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어야 하며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되는 감사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좀 더 많은 소득이 있으면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좀 더 건강하면 감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감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좀 더 성공하면 감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절대로 그러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가 좀 더 돈을 벌면 만족하고 감사할 것이라고 한 것처럼 그 “좀 더” 라는 잔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로 사는 게 아닙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감사하며 자족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을 가난하고 찌질 한 삶을 살 것이며, 아무리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산다 해도 늘 감사하며 자족하는 사람은 평생을 돈만 많은 부자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지난번에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이지선이라는 분이 방송에서 감사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청난 재앙으로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자신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런 재앙을 겪지 않았으니까 감사하며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은 며칠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보다 처지가 불쌍한 사람을 보며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처지가 나은 사람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의 감사는 금방 불평과 원망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처럼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형편이나 여건 때문에 감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또한 자신보다 못한 형편의 사람과 비교해서 감사하는 것으로도 안 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그래서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때문에 하는 감사나 비교하는 감사가 자신만의 절대감사를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절대감사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이것을 자족이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것이야말로 형편이나 여건에 흔들리지 않는 절대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