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이 사람의 문제는 유산상속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묻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이 사람은 대뜸 예수님에게 부탁하기를 자기 형에게 명령하여 유산을 자기와 나누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에게 원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도 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불행하고 문제가 있는 유일한 이유는 형이 내게 돌아와야 돈을 가로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몫을 받지 못한 것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위로 형에게 유산을 다시 나누라 명령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생에 대한 그의 진단과 결론에 예수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문제는 유산을 독차지 한 형에게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억울해 하는 자신에 문제가 있다고 하십니다.

 

아마 예수님을 찾은 이 사람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자기는 형에게 자신이 받아야 할 부모님의 유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아마 속으로 예수님을 찾은 것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람은 자기가 불행한 이유는 오직 자신이 받아야 할 유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돈이 없기에 자신이 불행하다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은 것이고 예수님은 이런 마음을 탐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인생에 대한 예수님의 해결책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에게 관심 있는 유산에 대한 자신의 몫을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든 되돌려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예수님은 탐심이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난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돈이 부족한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고 싶은 것을 없는 상황이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자식에게 사고 싶은 것을 사주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워합니다. 비싼 차를 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크고 넓은 집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가난이 물론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하나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 지지는 않습니다. 가난이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는 있지만 가난보다 더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가난 그 자체보다 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지나쳐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예수님께서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실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탐심입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탐심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중요한 문제로 보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욕심만큼 살지 못해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도무지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욕심을 채울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채울 수 없는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욕심을 버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도 버려야 할 욕심을 버릴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의 삶에서 진짜 행복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