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준
모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칩니다. 어떻게 해야 복 있는 삶을 살고 어떻게 해야 저주를 받는 삶을 살 것인지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모세의 가르침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면 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거짓 신들을 따르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거짓 우상 신들을 섬겼습니다. 저주를 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이스라엘이 거짓 우상 신들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은 복을 잘못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들이 생각한 복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사람은 어찌되든 상관없이 오로지 내가 성공을 하고 이익을 얻고 부자가 되는 것만을 복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가르침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풍요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가나안 우상 신들이 약속하는 것은 공동체는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개인의 풍요와 건강과 성공입니다. 개인의 성공과 이익을 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신은 누구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가나안 신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의 길과 저주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넓은 길을 선택하고 결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면 됩니다. 아무런 변화도 용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욕심내는 대로 살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은 넓은 길이며, 쉬운 길이며, 편한 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좁은 길을 선택하고 결정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면 안 됩니다.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변해야 합니다. 이전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에 순종하지 말고 세상에 저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좁은 길은 불편하고 힘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대부분 우리의 선택과 결정의 기준은 무엇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당장 어떤 것이 더 내게 이익이 되느냐를 선택과 결정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니까 그것이 결국 어떤 것으로, 무엇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인지 길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당장 어떤 것에 나에게 편하고 쉬운 것인가? 만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 결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 넓은 길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이 바뀌길 원하고, 내 신앙이 성숙하길 원한다면 선택과 결정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이 당장 내게 이익이 되느냐가 더 이상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는 것인가? 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것을 원하고 바란다면 저는 굳이 신앙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세상과는 다른 것을 바라고, 세상과는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해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