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상처받는 이유

 

 

우리말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받는 상처의 대부분은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에게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항상 가장 믿었던, 가장 의지하였던 사람에게서 받기 때문에 큰 상처가 됩니다. 믿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받는 아픔은 결코 큰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가끔 자신의 실수나 아니면 무례한 사람에게서 욕을 얻어먹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몇 십분, 길면 몇 시간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며칠을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은 큰 상처를 받습니다. 정말 남들이 들으면 아무 것도 아닌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의지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였던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의 기억과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여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포기한다면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과 축복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늘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는 일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분명하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에센바흐의 말처럼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사람으로 인해 받는 기쁨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지 않을 완벽한 관계는 이 땅에 하나도 없습니다. 상처가 있기에 회복의 기쁨이 있고, 상처가 있기에 사람은 성숙하고 발전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냐의 문제이지 늘 상처를 낼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따라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언제든지 상처받을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관계는 늘 상호적인 것이어서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안 받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을 때에 제대로 치료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워보면 금쪽같이 다루어도 여기 저기 상처나 나며 자라갑니다. 좋은 부모는 상처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녀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좋은 부모는 상처를 잘 치료해 주어 그 상처를 잘 견디어 낼 수 있도록 돕는 부모가 좋은 부모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사람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믿음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대상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르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상처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에게 상처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예수님은 베드로를 믿지 않으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직한 베드로이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흔들릴 수 있고,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믿음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이기에 흔들리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과 완전함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