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 속에 세상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속에 교회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속의 세상과 세상 속의 교회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가르치셨습니다. 즉 세상 속에 교회가 들어가 살아갈 맛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야 할 사명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 속에 들어가 소금과 빛이 되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세상을 교회 안에 들여 놓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세상과 다르게 볼 줄 모르고,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할 줄 모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하는 이야기를 예수 이름으로 반복하는 정말 이상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예수 이야기, 성경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예수 이야기, 성경 이야기는 교회 안에 넘치고도 넘칩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이야기는 분명 하나님 이야기인데, 그 내용을 들어 보면 세상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라고 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잘 믿으면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가질 수 있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자녀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좋은 대학을 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마치 선거 때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그럴듯한 공약을 남발하듯이, 목사들이 그럴듯한 장밋빛 공약을 남발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약속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예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이나 부자가 되는 방법을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이 아니라 섬김을 친히 보여 주었고, 세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패배가 진짜 세상을 이기는 것임을 보여주셨고, 나를 믿고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으며 오히려 세상에서는 예수님 때문에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란 본시 세상과는 바라보는 관점과 지향점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과 방법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교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세상이 보는 것밖에 못 보고, 세상이 하는 이야기밖에 할 줄을 모르는 정말 이상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교회가 세상의 과학이나 정치 경제 문화와 담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 역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이 발견한 진실과 기술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보다 훨씬 지혜롭고 효율적인 처방을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만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세상에 말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것을 세상에 주어야 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삶의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명과 죽음이라는 삶의 궁극적 질문에 대해,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성공을 넘어선 참된 인생에 대해, 소유를 넘어선 존재에 대해 말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세상은 그 어디에서도 말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또 말해 줄 수도 없습니다.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교회를 통해 세상에 말씀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야 합니다. 세상이 말해 줄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최고의 책무요 최고의 봉사일 뿐 아니라, 교회의 영광이요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