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0 요일 아침묵상회개

 

 

마가복음 1:4-5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And so John came,

baptizing in the desert region

and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The whole Judean countryside

and all the people of Jerusalem went out to him.

Confessing their sins,

they were baptized by him in the Jordan River.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암시하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마가는 세례 요한을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마가복음 1:2-3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그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요한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마가는 기록하기를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메시아(그리스도)

오시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세례 요한이 한 일은 다름 아닌

회개를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이

장차 오실 메시아(그리스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만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선포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회개입니까?

세례입니까?

 

세례 요한의 선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포인트)

세례가 아니라 회개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강조점을 회개가 아닌 세례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왜곡이 시작됩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에서

세례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예식입니다.

 

세례라는 종교적 형식(예식)

별 것 아닌 것으로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모든 종교적 형식에는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례라는 종교적 예식(그릇)

기독교 신앙에서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세례라는 종교적 예식에

회개라는 고백과 결단(내용)이 빠진 세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빈 그릇에 불과합니다.

 

세례라는 종교예식이 중요한 이유는

세례라는 종교예식에

기독교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회개라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회개라는 내용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세례라는 종교적 형식에만 초점을 둡니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무엇입니까?

 

세례의 형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일부 교단은(감리교, 장로교 등)

머리에 물을 뿌리는 상징적 의미의 세례로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다른 교단들은(침례교, 순복음 등)

반드시 몸 전체가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만 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일부 침례를 실시하는 교단은

머리에 물만 뿌린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례나 침례와 같은 형식에 집착하여

어떤 형식으로 세례(침례)를 받았느냐를

구원의 증거로 주장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할례(circumcision)을 주장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기독교 신앙의 중대한 왜곡입니다.

 

중요한 것을

어떤 형식의 종교적 예식(세례, 침례)가 아니라

정말 그 예식을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회개를 고백하고 결단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회개가 없는 세례(침례)

백 번 아니 천 번을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가 없는 세례(침례)

카톨릭 교회가 팔았던 면죄부를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영적 타락입니다.

회개에 대한 선포는

세례 요한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때

세례 요한과 똑같은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좋은 소식)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냥 복음을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회개는

단순히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자책하며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라고 합니다.

회개는 후회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럼 회개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회개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을 고백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인생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며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36a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나라는 이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의 나라는 하늘에 있고

세상 나라는 땅에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 나라와 예수님의 나라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예수의 나라를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익숙해진 세상살이 방식에서 발을 빼야만

비로소 예수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의 나라, 하나님나라는

회개하는 자에게만 열리는

눈에 보이진 않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선포한 회개의 세례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있어야만

비로소 예수님이 전파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을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눈에 보이는

종교적 형식(세례,침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정말 중요한 신앙의 내용(회개)은 없고

오로지 형식만 붙잡고 신앙 생활하는

껍데기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