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1 요일 아침묵상광야

 

 

 

마가복음 1:6(표준새번역)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다.

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의 모습은,

거칠고 뻣뻣한 낙타털 외투(겉옷)를 입고는

허리에는 평범한 가죽 띠를 매었습니다.

 

거주하는 집도 없이 광야에서 생활했으며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입었던 낙타털 옷은

당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며,

 

세례 요한이 먹었던 메뚜기와 야생 꿀 역시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야생에서 구하였던 음식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모습은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기 전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올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말라기 4:5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에게도 천사가 나타나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 같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누가복음 1:17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의 선구자로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 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이 바로

구약성경이 앞으로 올리라 예언한

엘리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13-14

모든 예언자와 율법서는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늘 나라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 예언을 받아들이고자 하면,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먹고 자며

메시아(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며

광야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며

강조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떠나서

40년 동안을 머문 곳이 어디였습니까?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

(팔레스타인) 광야입니다.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 것처럼,

 

광야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어야 할 삶의 자리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한 순간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해 보이는 세상 삶에서

고단하고 힘들어 보이는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안락하고 편안해 보이는 삶을 버리고

스스로 거칠고 고단한 광야와 같은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를 지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광야와 같은 삶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광야를 걷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그네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나그네가

순례의 길을 가는 도중에 큰 집을 짓고는

거기에 집착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겠습니까?

 

나그네가

자신이 입을 화려한 옷과

자신이 먹을 값비싼 음식에 집착한다면

어떻게 힘든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소개하며

이들이 장막에 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9

믿음으로 그는(아브라함)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장막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으로 만족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지으실 영원한 터,

하나님이 경영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불과 오육십 년 전만 해도

교회 건물은 단순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미덕이었으며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최대한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지은 교회건물이

목사와 교인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검소하고 절약하는 목사가 존경을 받았고

교인들의 검소한 삶이

기독교인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가

다른 목사보다 더 비싼 차를 타고

크고 화려한 주택에 살며

명품을 옷을 입는 목사가

존경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점점 더 교인들끼리

누가 더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를 가졌는가를

자랑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내심 속으로 바라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풍요를 보장하는

맘몬(Mammon)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풍요와 성공의 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설교하기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지만

내심 속으로 바라는 것은

내 뜻이 이루어지고 성공이 보장되는

목사의 나라를 꿈꾸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같이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살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라고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단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검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명품을 두른 사람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존경하고 부러워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영원하고 존귀한 것을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욕심을 버리고

순례자(나그네)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임을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