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1 요일 아침묵상예수님의 권위

 

 

마가복음 1:21-22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 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They went to Capernaum,

and when the Sabbath came,

Jesus went into the synagogue

and began to teach.

The people were amazed at his teaching,

because he taught them as one who

had authority, not as the teachers of the law.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구나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갔을 때에도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 고을을 다니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는

다시금 가버나움에 들어갔을 때도

예수님께서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가복음 2:1-2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심지어 바닷가에서도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나아오자

그들에게도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마가복음 2: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 없이

기적을 행하거나 사역에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제일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이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가장 대표적인 종교지도자였던

서기관(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2 (표준새번역)

사람들은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이 달랐던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과

현재 교회의 가르침이 다를 수도 있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성경)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을 다른 말로 번역하며

율법학자로 번역합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율법(성경)에 있어

가장 권위 있는 사람들(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서기관들의 해석과 가르침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 회당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많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에 관해서는 가장 권위 있다고 하는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함부로 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서기관들과는 다른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서기관들의 권위와

예수님의 권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권위가 서기관들의 권위와 달랐다고

사람들이 놀랐을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서기관들이 보여준 권위는

권위(authority)라기보다는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였다면,

예수님이 보여주신 권위는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권의주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권위였습니다.

 

율법주의와 율법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

권위주의와 권위는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별력은

TV를 켜기만 하면,

인터넷에 연결되기만 하면

온갖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와 가르침이

넘쳐나는 이른바 요즘과 같은

말씀의 홍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영성입니다.

 

예전에는

잘 몰라서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다면,

요즘에는

넘쳐나는 주장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느라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합니다.

 

분별할 줄 아는 영성은

온갖 정보와 신학과 설교와 주장이 난무하는

말씀과 정보의 홍수 시대에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영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와 권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신을 높이려는 것을

권위주위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높이는 것을

권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위라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높여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자발적으로 존중해 주어야

비로소 권위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힘이나 지식이나 돈으로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입니다.

 

권위라는 것이

단지 전문적인 지식이나 또는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만으로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지위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지위나 힘을

무엇을 위해 또는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의 지위나 지식이

권위가 될 수도 있고 권위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기관들이 보여준 모습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권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 말씀이 가진 능력과 힘은

진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힘이었으며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신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깨우치고 도우시므로

진짜 권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꾸만 나를 지배하고 억압하고

내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느낀다면

이것은 권위주의에 영향을 받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신앙이

세상이 만들고 계속해서 세뇌하고 있는

잘못된 가치관이나 가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각과 더 높은 가치와

더 큰 이상을 가지게 한다면

이것은 권위 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 권위는

자신이 가진 힘과 지식 또는 권력을 가지고

남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교인들의 권위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충분히 남에게 복종을 강요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자신이 가진 힘으로 약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모습은

서기관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권위주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던

권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권위와

종교지도자들의 권위주의를

분별할 줄 아는 영성을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참된 권위를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