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목요일 아침묵상–죄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
마가복음 2:5-7 (표준새번역)
6 율법학자 몇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할까?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8 예수께서,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마음으로 알아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9 중풍병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걸어 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
6 Now some teachers of the law were sitting there,
thinking to themselves,
7 "Why does this fellow talk like that?
He's blaspheming! Who can forgive sins
but God alone?"
8 Immediately Jesus knew in his spirit that
this was what they were thinking in their hearts,
and he said to them,
"Why are you thinking these things?
9 Which is easier: to say to the paralytic,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Get up, take your mat and walk'?
10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중풍 병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고 사람을
네 사람이 침상 채 예수님께로 데려 왔습니다.
예수님에게 병을 고침받기 위해 데려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환자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이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데려온 이유는
병에서 나음을 받기 위함이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네가 병에서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예수님의 선언은(말씀은)
율법학자들에게 미움을 받으실 줄 아시면서도
의도적으로 작심하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어제 아침묵상에서는
예수님에 대한(기독교 신앙에 대한)
잘못된 기대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나 믿음을 깨뜨리기 위함이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다른 관점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예수님께 몰려든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은 귀신을 내쫓아주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환자나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약자와 병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예수님께서
병든 이들의 간절한 소원을 지나칠 수 없기에
찾아온 이들을 치유해 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짜 목적은
병자를 치유하거나 귀신을 쫒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가 왔을 때
의도적으로 ‘네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고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예수님의 선언은
매우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특별히 신학의 전문가인 율법학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감히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과 주권을 침범하는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신성 모독에 해당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칭 하나님에 대해
전문가라고 하는 율법학자들에게는
예수가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했다고
발끈하고 분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자칭 하나님에 대해 전문가라는
율법학자들에게 죄인은
용서하거나, 용서를 받도록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죄인은
함께 어울려 식사도 함께 해서는 안 되는
오로지 멀리해야 하는 버림과 정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것이 죄인들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생각이며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와 자세는 율법학자들과는
전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죄인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게 돌보아야 할
사랑의 대상이요, 섬김의 대상이었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마가복음 2장 17절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요,
인간의 죄와 죄인을 심판하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입니다.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다른 종교나 신앙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신앙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발견하는
기독교 신앙만의 중요한 특징이며 핵심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복을 받고,
죄인이 심판과 응징을 받는 것이
대부분의 다른 종교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가르침입니다.
심지어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모든 나라의 동화, 영화, 소설, 음악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주제입니다.
이처럼 의로운 사람이 복을 받고,
죄인이 심판과 응징을 받는 것은
인류가 공유하는 공동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예수님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가르침입니다.
기독교 신앙 외에는
그 어떤 종교나 신앙도
용서에 근거를 둔
종교나 신앙은 없습니다.
복잡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인간의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다름 아닌 용서입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님은 왜
인간의 죄에 대한 문제를
용서로 해결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죄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칭 성경의 전문가라는 율법학자들은
죄인을 분리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들의 시도는 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죄인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을 감옥으로 만들어
죄인들을 다 감옥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죄인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당장은 죄인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죄인들은 늘어날 것입니다.
죄인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죄인을 긍휼하게 여기고
죄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죄인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어렵고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밖에는
인간의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고,
용서를 통해서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인을 멀리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죄를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과 용서만이 죄를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변화시키고 구원하시는
가장 강력한 능력은 용서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용서를 받음으로 나음을 입은 것처럼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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