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월요일 아침묵상–할 수 있음의 신앙
마가복음 2:23-24 (표준새번역)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이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지 못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3 One Sabbath Jesus was going through the grainfields, and as his disciples walked along, they began to pick some heads of grain.
24 The Pharisees said to him, "Look, why are they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
25 He answered, "Have you never read what David did when he and his companions were hungry and in need?
26 In the days of Abiathar the high priest, he entered the house of God and ate the consecrated bread, which is lawful only for priests to eat. And he also gave some to his companions."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밀밭을 지나가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약간의 밀 이삭을
손으로 잘랐습니다.
아마도 배고픈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따지듯 항의하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바리새인들이 따지듯 물었던
안식일에 제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남의 밀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배고픈 사람이 남의 곡식밭에 들어가
도구(낫)가 아닌 손으로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3: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율법은 굶주린(배고픈) 사람이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이웃의 곡식밭에서 곡식을 손으로 따 먹는 것을
관용과 긍휼의 정신으로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땀 흘려 농사를 한 것을
지나치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굶주림을 채우는 것 이상의 절취는
율법으로 엄격히 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을 가르치셨으며
동시에 개인의 권리도 인정하고 보호하셨습니다.
따라서 마침 굶주렸던 제자들이
남의 밭에서 이삭을 자르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비난한 것은 무엇일까요?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6: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제자들의 행동은
안식일에는 타작을 금지한 바리새파 율법주의자들의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이런 식으로 안식일 규정을 적용하여
제자들을 비난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여기셨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을 어겼다고
제자들을 고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선 그들이 영웅으로 여기는
다윗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다윗의 이야기는
사무엘하 21장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급하게 성소가 있는 곳으로 도망칩니다.
급하게 도망하느라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다윗은
성소가 있는 놉까지 도망하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습니다.
며칠을 굶주린 다윗은 성소에 도착하자마자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지금 당장은 마땅히 먹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주일간이나 제단에 올려 졌던
진설병이라는 떡만 있다고 합니다.
제단에 올려 졌던 진설병이라는 떡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빵)이었습니다.
진설병이란 빵은
함부로 달라고 해서도 안 되고,
달란다고 아무에게나 주어서도 안 되는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빵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굶주렸던 다윗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다고 규정한
거룩하다는 진설병이라도 달라고 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굶주린 다윗의 간청에
율법이 금지한 진설병을 주었습니다.
거룩하다고 하는 성소에서
하나님에 드려진 거룩한 빵을 달라는 다윗이나
그 떡을 주는 제사장 아히멜렉의 모습에서
율법의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영적자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질서이며 무례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면서까지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닙니다.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도록 제한(규정) 된 떡입니다.
왜 이런 규정이 생겼을까요?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용도가 끝났다고 함부로 버리거나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제단에서 사용하고 난
진설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함부로 다루지 않고 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율법의 규정이
함부로 아무나 먹지 못하도록 제한한다고 해서
굶주린 사람의 배고픔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적인 형식이나 관습
또는 전통을 무시하자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무너지면
교회는 거룩함이나 경건함이 없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맙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얽매여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한다면
결국 교회는 죽은 신앙이 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형식이나 규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윗이나 제사장 아히멜렉은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에
그 신앙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성소에서 식량을 구하고
제사장 아히멜렉은 굶주린 다윗에게
진설병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식과 제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형식과 제도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의 삶에서 나타나는 영성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할 수 없는 것만 많아지는 사람은
신앙이 주는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갈수록 힘들고 버겁습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것이 더욱 많아지는 사람은
신앙을 통해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갈수록 기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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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진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결혼생활의 행복이 달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일까요?
결혼하고 나서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규정에 얽매이면
살면서 할 수 없는 것만 많아집니다.
그러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집중하면
율법 안에서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좋은 신앙이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하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고발하는
스스로 거룩하다는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느냐?
이것은 곧
율법이 사람을 위해 있느냐?
사람이 율법을 위해 있느냐?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요즘 식으로 한다면,
교회가 사람을 위해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 교회를 위해 존재하느냐? 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복잡해 보이는 율법의 규정들은
사람들의 삶을 속박하고 억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주신
최소한의 규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를 속박하고 억압하고
무엇을 금지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할 수 없는 일만 많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신앙에 문제가 있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믿음은
깊어지면 질수록 누리는 자유가 더 커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늘의 기도】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성경에 기록된 문자와 교리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문자와 교리와 형식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과 정신을 깨닫고 누리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