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6일 화요일 아침묵상-성령을 모독하는 죄(2)

 

 

마가복음 3:28-30 (개역개정 NIV)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예수님을 반대하였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가 미쳤다는 거짓 소문을 내어

예수를 비방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수가 미쳤다는 거짓 소문을 내어

예수를 비방하고 모독하는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2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그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고 단호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예수님에게 빼앗길까봐

성령을 힘입은 예수님의 사역을

바알세불(귀신의 왕)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고

거짓 증거 합니다.

 

그들이 거짓 증거를 한 것은

그들이 진실을 말한 능력이 없어서도

그들이 진실을 모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모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인간의 연약함이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대적하려는

악의에서 비롯된 죄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죄로부터 돌아서지도 않는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수 있겠습니까?

 

회개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가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려고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결코 용서하지 않고

영원한 심판을 받게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라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은

죄를 인정하거나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용서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용서하시길 즐겨하시는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까?

 

물론 이론적으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죄의 영역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스스로 용서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

즉 고의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스스로 용서받을 길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10:26-29 (표준새번역)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얻은 뒤에

일부러 죄를 지으면,

그 때에는 속죄 제사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무서운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킬 맹렬한 불뿐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어긴 사람도 가차 없이,

두세 증인의 증언을 근거로 하여 사형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드님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은,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발아야 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얻은 뒤에

일부러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해 다시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오직 맹렬한 심판만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또는 무지해서(몰라서) 저지르는 죄도

심판받아야 할 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령에 대한 진리를 알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아는 진리를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유독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엄격하게 책망하시고 저주하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저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성령이 하시는 일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종교지도자(목사)들이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왜곡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모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인들도

너무나 쉽게 빠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유혹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그 어떤 악한 세상의 권세도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빼앗을 수 없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분명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지나쳐서

한번 구원 받으면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거나

한번 정해진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니

자신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면

이것은 곧 성령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온전하고 흠이나 죄가 없기 때문에

주시는 은혜가 절대로 아닙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여기저기 흠과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누리는 은혜가

죄 사함의 은혜이며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고 변화시키려는

회개의 마음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권면하기를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12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대로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십니까?

 

높은 산에서 뛰어내려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십니까?

 

아니면 돌들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보라고 하십니까?

 

이도저도 아니면

집을 팔아서 바치라고 하던가요?

 

도대체 성령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애쓰고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때론 내 욕심이 커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는 성령의 인도함대로

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내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과 신앙을 바꾸려고 애쓰면 됩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신앙이 성령을 모독하지 않는 삶이며

나아가 성령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오늘의 기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거나 거부하거나

제멋대로 왜곡하는 죄를 짓지 않고

세미하고 부드러운 성령의 역사하심에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