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3일 금요일 아침묵상-좋은 땅에 뿌려진 씨

 

 

마가복음 4:3-9 (표준새번역)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 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가 되었다."

예수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가복음 4:20 (표준새번역)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 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씨 뿌리는 비유는

예수님에게서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사람들마다 제각각으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가 마지막으로 떨어진 곳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마가복음 4:7 (표준새번역)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렸지만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자갈밭에 떨어지고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싹도 내기 전에 새들이 쪼아 먹었습니다.

 

자갈밭에 떨어진 씨는

비록 싹은 냈지만 뿌리가 없어 말라 죽었습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고 자라는 것 같더니만

가시덤불의 기운에 막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수고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비록 적은 양의 씨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있었습니다.

 

싹이 나고 열매를 맺었는데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가 되었습니다.

 

헛수고처럼 보였던

씨 뿌리는 사람의 수고가

결코 헛수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적은 씨만 좋은 땅에 떨어졌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적은 씨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4:20 (표준새번역)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 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좋은 땅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열매를 맺는

매우 중요한 영적원리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은

네 종류의 땅으로 비유된

네 부류의 사람이 똑같았습니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좋은 땅으로 비유된 사람은

말씀을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똑같은 비유를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마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다는 예수님의 해석을

누가복음은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기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잘 지키며

인내함으로 열매를 맺었다고 설명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유는

싹을 보거나 잎이나 꽃을 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유일한 이유는

열매를 맺어서 열매를 거두기 위함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는

농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들은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우리가

들은 말씀 그대로 산다는 것이

자신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잘 안됩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성경구절을 이용하여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앙을 합리화합니다.

 

마가복음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러나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앙을

합리화 하라고 가르쳐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들은 말씀대로 살기에는

우리의 육체적 능력이 너무나 연약하니까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육신이 약하니까

더욱 깨어 기도하라는 가르침이지

육신이 약하다는 이유로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신앙을

합리화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들은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다가

말씀을 지키는 일에 실패하는 것과,

 

말씀을 들을 때부터

말씀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이 차이를

구별하지도 않고 중요하게도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 차이를

분명히 구별하시고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많은 교인들이

예배를 많이 드리는 것을 자랑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새벽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성경을 많이 읽은 것에 대해 자랑하며

그렇지 못한 교인을

믿음 없는 자라고 여깁니다.

 

많은 교인들이

자신이 잘하는 종교행위 한두 가지를 가지고

그렇지 못한 교인들을

제멋대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종교행위에 대한 열심이

나쁘다고 드리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종교행위들로 자랑을 삼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매 끼니마다

식사를 챙겨먹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세 끼 밥 먹은 것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밥을 먹습니까?

 

옛날 가난한 시절이라면

이런 것도 자랑이라면 자랑일 수 있겠지만

지금 세 끼 밥 먹었다고 자랑하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세 끼 밥을 먹는 이유는

음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 건강하게 살기 위함이지

밥 먹은 것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내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말씀을 듣는 것이지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일하는 곳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곳이고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내야 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모습이 신비한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너무나 황홀한 경험을 한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서 초막을 짓고 살자고 합니다.

 

산 밑으로 내려가 봐야

아비규환과 같은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이니

그냥 여기에 머물러 살자고 합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이

베드로의 신앙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신비를 경험하는 이유는

교회에 머물러 있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열매는 교회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 하셨지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고 빛이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말씀을 듣고는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선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닫게 하셔서

꾸준한 시도와 실천으로

말씀의 열매를 내 삶에서 맺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