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목요일 아침묵상-겨자씨로 비유된 하나님 나라
마가복음 4:30-32 (표준새번역 NIV)
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가?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32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수시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면
따르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던지,
돈이 엄청나게 많던지 해야 하는 데
예수님에게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으셨습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의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도무지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무지 불가능할 것이라
여기는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자라나는가를 가르치신 말씀이
마가복음 4장에 나오는 다섯 가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겨자씨의 비유는
유대인들이 작고 보잘것없이 여기는 겨자씨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는
대수롭지 않은 작고 볼품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에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비유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겨자씨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신 예수님은
스스로 겨자씨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탄생하신 날을
세계가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로 여기지만
처음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날은
특별할 것이 없는 매우 초라한 탄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당시 유대의 중심지 예루살렘이 아니라
유대의 시골이었던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심지어 태어날 곳도 마땅치 않으셔서
짐승들의 오물로 가득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시자마자 헤롯왕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해야 했으며
유대 땅에서 가장 외지고 알려지지 않은
촌구석 나사렛에서 30년간을 사셨습니다.
나사렛이 얼마나 시골이었냐면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빌립의 말을 듣고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며
빈정거릴 정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학벌도 지위도 돈도 없는
가난한 어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는
세리 마태와 같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숫자도 겨우 12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나머지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잡혀가시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의 삶이나 공생애 사역 모두
겨자씨 같이 대단하지도 볼품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일,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기라 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삶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마태복음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복음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작은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셨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는
예수님의 방법이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과 방식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겼습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만들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 같았던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별 볼일 없던 제자들이
사도가 되고 복음의 증인들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방식입니다.
세상은 작은 것을 무시합니다.
작은 것을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땅이 작아서인지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대자(大)를 많이 씁니다.
나라 이름부터가 대한민국입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도 대통령입니다.
학교도 대학교 대학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길 이름도
거의 모든 길 이름을 대로라고 하고
한국의 대부분의 다리도
거의 대부분 대교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것들을 숨기고 감추려고 하고
심지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다는 것은
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다, 좀씨 같다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이런 생각이
교회와 신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배도 주일 낮 예배는 대예배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일 대예배를 드려야만
비로소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 이름도
중앙교회, 제일교회가 가장 많습니다.
어느 도시를 가던
00중앙교회, 00제일교회가 없는 곳은
아마 단 한 지역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이름에서부터 나타나듯
중심이 되고자 하고 제일이 되고자 합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들이 너무 지나쳐
언제부턴가 최고와 최대가
교회와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은
메인스트림(주류, Mainstream)에 대해 야망을
비전이라고 꿈이라고 사명이라고 가르칩니다.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고
우리 자녀들이 살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메인스트림이 되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신분과 처지를 바뀌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메인스트림이 되는 것으로
세상과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인스트림이 아니라
비주류, 변방의 인생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시고 확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의 비주류였던 갈릴리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두리 인생이라고
세상이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던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성도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최고와 최대 또는 메인스트림이 아닙니다.
성도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가치는
영원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최고와 최대 또는 메인스트림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구원이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것처럼
성도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세상의 성공이나 메인스트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입니다.
요한복음 6:27 (표준새번역)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는
최고 최대 제일이 중요하지 않고
영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을 깨닫고
영원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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