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목요일 아침묵상-목자 없는 양
마가복음 6:33-44 (표준새번역)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보고서, 그들인 줄 알고,
여러 성읍에서 길을 따라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3 But many who saw them leaving recognized
them and ran on foot from all the towns and got
there ahead of them.
34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eaching
them many things.
쉬기 위해 일부로 외딴 곳(광야)을 찾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외딴 곳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이미
미리 예수님의 도착지를 알아 챈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신 배를 발견하고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려는 곳에 먼저 가서는
예수님과 일행이 오길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쉬기 위해
제자들과 외딴 곳을 찾으셨지만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을
모른 척할 수 없으셨습니다.
잠시라도 사람들에게서 떠나
안식의 시간을 가지려던 계획이
외딴 곳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배를 돌려 다른 곳으로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먼 길을 달려 온 저들의 모습에서
간절함과 절박함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들의 처지와 형편을 보시고는
목자 없는 양 같다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가복음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왜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저들을 마치 목자 없는 양 같다고 여기셨을까요?
정말 당시 유대 백성들에게는
저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나 목자가 없었기에
목자 없는 양 같다고 여기셨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에게는
자신이 지도자요 목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헤롯왕과 정치 권력자들, 사두개인들이
유대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자처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그리고 제사장들이
유대 백성들의 목자라고 자처했습니다.
여러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의 목자요 지도자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는
목자 없는 양 같다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목자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지도자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양을 돌보고 보호하며
일용할 양식을 찾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국민들을 위해
정치 지도자들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국민들을 위해
정치 지도자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과연 현실이 어떠합니다.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오히려 백성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들의 부와 권력과 힘을 지키려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 역시
자신들의 명예와 권위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율법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억압하고 힘들게 했습니다.
세상 권세 잡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 권세의 본질이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권력 잡은 소수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세상 권세를 잡은 정치 지도자들과는
분명 달라야 합니다.
세상 권세가 섬김을 받는 자리라면
영적 권세는 남을 섬기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을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 지도자들처럼 백성들의 위에 군림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지도자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을 섬기는
본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 지도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교와 자신들의 영적권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욕심과 명성을 얻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은
정치 지도자들의 타락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타락에 대해
당시 정치 지도자들 보다
더 엄중하고 엄격하게 비판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오늘 우리의 종교(교회) 현실은
예수님 당시와 비교해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교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교인들이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목사는 교인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과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교인들에게 필요 이상의 희생이나 봉사
또는 헌금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속셈은
교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이용해
목사들의 부를 채우고
명예와 명성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자기 교회의 이름과 목사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 속셈은 따로 있습니다.
교회와 목사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서
자기 교회와 목사가 유명해지면
다른 교회보다 자기들의 교회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것은
교회의 이름이나 목사의 이름이 아닙니다.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진짜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에게는 더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들이 누리는 종교적 권한과 지위가
남들보다 더 크고 높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권세와 지위에는
더 엄격한 판단과 심판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직분자들이
왜 더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까?
이미 남들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람이 크면 클수록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도 커진다는 것을 깨달아
더욱 낮은 자리에서 이웃을 섬기는
크리스천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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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