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목요일 아침묵상-일곱 개의 이적
마가복음 6:53-56 (개역개정, NIV)
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53 When they had crossed over, they landed at
Gennesaret and anchored there.
54 As soon as they got out of the boat, people
recognized Jesus.
55 They ran throughout that whole region and
carried the sick on mats to wherever they heard he
was.
56 And wherever he went--into villages, towns or
countryside--they placed the sick in the
marketplaces. They begged him to let them touch
even the ed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him were healed.
마가복음 4장 35절부터 6장 5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이적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1) 풍랑을 잔잔케 하심: 4:35-41
2) 군대 귀신을 쫓으심: 5:1-20
3) 혈루증 여인의 고치심: 5:21-34
4)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심: 5:35-43
5) 오병이어의 기적: 6:35-44
6) 바다 위를 걸으심: 6:45-52
7) 각종 병자를 고치심: 6:53-56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 일곱 가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사건을
단순하게 기적(miracle)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사건은
주로 표적(sign) 또는 이적이라고 합니다.
표적(sign)이 무엇입니까?
표적은 단순히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기적이 아닙니다.
표적은
특별한 사건이나 기적을 통해
상징하거나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을 때
표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기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기 위한
이적(표적, sign)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알리려는
뚜렷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일곱 가지 이적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이런 마가복음의 의도가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적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중
큰 광풍이 일어나서
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고 고요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은 놀라며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순종하느냐며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마가복음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마가복음은 제자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시냐는 질문을 하고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소개한 것입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제자들에게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이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 위기에 놓인 배에서
예수님에 대해 제자들이 가졌던 의문에 대해,
갈릴리 바다에서 역풍을 만나
밤새도록 오도 가도 못하는 제자들에게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역풍을 만나 밤새도록 노를 저었지만
오도 가도 못하고 지쳐있는 제자들을 돕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소리를 지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6:50
그를 보고, 모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안심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나다’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성경에 ‘나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뜻하는 계시적 표현입니다.
이사야 43:11
나, 곧 내가 주이니, 나 말고는 어떤 구원자도 없다.
이사야 43장 11절에서
하나님을 뜻하는 나 곧 내가(ego eimi) 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나다’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나다’라는 표현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출애굽기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곧 나다.”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복잡해 보이는 이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적 사건에서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시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으신 이적을 통해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십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가졌던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나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마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가복음 6: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디어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일곱 가지) 표적을 보면서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가 누구이신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신비하고 놀라운 기적에만 압도당하여
놀라거나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에만 초점을 두었기에
여러 가지 이적을 경험하면서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으며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나의 이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배우고 훈련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배고픈 상황이 닥쳐도
당장의 배(욕심)를 채우기 위해
이방의 풍습을 쫓거나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먹고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의 풍요와 쾌락을 약속해주는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광야에서의 40년 동안
만나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바른 믿음을 배우고 깨닫는 데 실패했듯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수많은 군중들과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배우고 깨닫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교회와 교인들을 통해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고난을 당하고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비하고 놀라운 능력으로
내가 소원하는 세상에서의 풍요와 성공을 이루어 주실
자신이 만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고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이루길 원하시는지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깨닫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