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월요일 아침묵상-칠병이어의 표적
마가복음 8:1-10 (공동번역)
1 그 무렵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 들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2 "이 많은 사람들이 벌써 사흘이나 나와 함께 지냈는데 이제 먹을 것이 없으니 참 보기에 안 됐다.
3 그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중에는 먼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 제자들이 "여기는 외딴 곳인데 이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빵을 어디서 구해 오겠습니까?" 하고 반문하자
5 예수께서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일곱 개가 있습니다." 하니까
6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땅에 앉게 하시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시키시는 대로 나누어 주었다.
7 또 작은 물고기도 몇 마리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뒤에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8 군중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고
9 먹은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다. 그 뒤 예수께서는 군중을 헤쳐 보내신 다음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마가복음 5장의 오병이어 사건과
마가복음 8장의 칠병이어 사건은
얼핏 매우 비슷해 보이는 예수님의 이적입니다.
두 사건이 비록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두 이적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와 교훈은
결코 비슷하지 않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굶주린 유대인들을 위해 베풀어진 이적이라면
칠병이어의 사건은
굶주린 이방인들을 위해 베풀어진 이적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는
불과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사람들의 굶주림을 걱정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35-36(개역개정)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그런데 칠병이어 사건에서는
사흘이나 지났음에도
제자들 가운데 누구도
사람들의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
오히려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하고 나섰습니다.
마가복음 8:1-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요?
오병이어 사건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지만,
칠병이어 사건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전통에 의하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따라서 유대민족의 종교전통에 따르면
이방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과는 달리
칠병이어 사건에서 제자들이
사람들이 굶주리는 일에 무관심했던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과는 달리
종교전통에 얽매이지 않으신 예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하지 않고
굶주리는 사람들 모두를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섯 개의 빵으로 유대인 오천 명을 먹인 것처럼
일곱 개의 빵으로 이방인 사천 명을 먹이는
놀라운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함께 어울려 앉아서
예수님께서 주신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간에
그 어떠한 편견이나 차별도 없이
모두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한 것입니다.
칠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마가복음이 보여주려고 했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칠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어울려 앉아
음식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담을 허시고,
경계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차별을 없애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만의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셨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대인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인종과 인종 사이에
그 어떤 차별도 없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칠병이어의 사건이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표적입니다.
이것은 곧 교회가 배워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끼리끼리 모입니다.
자기들 수준에 따라
구별을 하고 차별을 두어 모입니다.
세상은 차별과 구별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교회는
차별과 구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의 방식과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는
빈부의 차이와 상관없이
학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세상 지위의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에서
각각 열두 광주리와 일곱 광주리의
음식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은 음식을 모은
광주리의 숫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섯 개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
일곱 개의 빵과 물고기 몇 마리로는
도저히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적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두 사람이 먹어도 부족할 것 같은 음식을
그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음에도
모든 사람들이 부족함 없이 먹었고
오히려 음식이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생각과 방법은
나누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자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표적은
나누면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남는 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5년 기준으로
당시 세계 인구 60억 가운데
절대적 빈곤에 놓여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무려 8억 5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평균 5초에 1명의 어린이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5년 당시
세계가 생산한 식량은
세계 인구의 2배인 120억의 인구를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배고프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
충분히 먹을 음식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이
매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 갑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일까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기 보다는
혼자 독식하고 독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먹을 것이 부족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먹을 줄 모르기 때문에
나 혼자 더 많이 먹으려는 욕심 때문에
굶어죽고 영양실조에 걸려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하기를
남들이야 어떻게 됐든
나만, 내 가족만, 내 교회만, 내 나라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필요 이상의 것을 욕심내게 만들어
사천 명 분을 혼자 독식하는 사람이나 교회가
성공한 사람이요 교회이며
위대한 사람이며 교회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입니다.
세상의 교훈처럼
사천 명분을 혼자 독식한 사람이나 교회가
결코 성공한 사람이나 교회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사천 명을 먹이려고 시도한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칠병이어 사건에 숨겨진
예수님의 표적이며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도전입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은 차별과 구별을 당연하게 여기며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을 능력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차별과 구별을 무너뜨리시며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많이 나누는 것이
믿음이고 영성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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