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금요일 아침묵상-표적과 이적(기적)
마가복음 8:11-13 (표준새번역)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와서는, 예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그에게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요구하였다.
12 예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 당신이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으로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8: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차례
불치병 환자들을 신비한 능력으로 고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12년 된 혈루증 환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
게다가 두 번씩이나
한두 사람이 먹어도 부족할 음식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이 모든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을
이미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베푸시고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얼핏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을 몰래 지켜보고도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표적과 기적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얼핏 비슷하게 보이는
표적과 기적에게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적은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사건입니다.
일상적이지 않는
신비하고 놀라운 일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오래전 한국 TV 프로그램 중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연 가운데
너무나 충격적인 사연이라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사연이 있습니다.
태국에 사는 사람인데
하루에 평균 형광등 5개 이상을 먹습니다.
매일같이 형광등을 먹기 위해
수명이 다한 형광등을 수집하러 다닌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형광등 반개만 먹어도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형광등을
매일같이 평균 5개 이상을 먹고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것은
분명 기적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기적이란
초자연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표적이라고 한다면
특별하게 일어난 사건이 중요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계시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정리하여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기적이라고 하면
신비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사건이어야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적은
반드시 신비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표적은
신비한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가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표적으로
알려준 표적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12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포대기에 사여 구유에 누운 아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아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유가 무엇입니까?
말의 여물통이 구유입니다.
포대기에 싸여 말의 여물통에 누인 아기가
장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표적이었습니다.
이처럼 표적이란
신비한 기적(miracle)이나 놀라운 이적(wonder)
또는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신비한 물건과
같은 것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이나
너무나 평범한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나 계시를 나타내는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기적과 표적의 또 다른 차이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기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움입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놀라는 것입니다.
신기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표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나뉘게 됩니다.
표적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깨닫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표적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기적은
단순히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일 뿐이지,
기적이 결코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앙을 성숙시키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형광등을 먹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변화되거나
그 사람의 신앙이 성숙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기적과 다릅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인격과 신앙을 변화시킵니다.
기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놀랍고 신기한 반응을 가져온다면
표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과 신앙의 성숙을 가져옵니다.
아무리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거나, 경험하거나, 행한다고 할지라도
기적이 사람들의 신앙을 성숙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담고 있는 표적과
그 표적을 깨닫고 순종하려는 선택과 결단만이
사람들의 인격과 신앙을 성숙시킵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목격하거나 경험 하였음에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갖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원했던 것은
단지 신기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지만
이들이 내심 정말 보길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가 있는 표적이 아니라
단지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대하는 메시아는
자신들의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 줄
강력한 힘을 가진 정치적 메시아였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대하는 메시아는
자신들을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해 줄
강력한 능력을 가진 경제적 메시아였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신들의 믿음을 통해
더 큰 성공과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자신들에게 이전보다
더 큰 성공과 물질의 풍요를 주실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고 도우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예수님을 탄식하게 만드는
가짜 믿음입니다.
한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줄 수도 세상에서 얻을 수도 없는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일과를 통해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을 깨닫게 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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