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목요일 아침묵상-예수님과 함께 하는 신앙여정
마가복음 9:30-32 (표준새번역, NIV)
30 그들은 거기에서 나와서, 갈릴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남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31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서,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뒤에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가로질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비록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고는 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만 하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차례의 수난 예고를 통해
제자들의 부푼 기대를
산산이 깨뜨리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겪어야 할
수치와 모욕, 고난과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에
예수님의 수난 예고의 말씀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9: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을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가
산산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도전을 주는 사건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했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의 여행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여정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산산이 깨어지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표현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여정은
필요를 넘어선 우리의 욕심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하는 여행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여정은
세상 것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결국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는 여행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여정은
세상 것에 대한 우리의 소유와 자랑이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하는 여행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여정은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고 값지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산산이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을 보는 새로운 눈으로
무엇이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3:7-9 (현대어 성경)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으로 인해
단순히 내 기대와 소원이
산산이 깨지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도
자신의 기대한 대로 자신의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를 떠납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특별히 목사들)은
교인들을 교회에 붙잡아 두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열심을 다해 교회를 잘 다니고
정성을 다해 신앙생활을 잘 하기만 하면
교인들의 꿈과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 가르침으로 교인들을 붙잡아 둡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심각한 왜곡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만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열심도 열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인들은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욕심을 빼버리면
무엇을 위해 애통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간절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열심을 가져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신앙 여정은
단순히 세상을 향한
내 기대와 소원(욕심)이 깨어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이루시려고 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더 간절하고 갈급한 마음과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간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이 두려운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기대했던 것
예수님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
예수님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
이런 모든 것들이
소용없는 것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지금까지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신앙이 어렵고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내내
이 문제로 인해 충돌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없고
예수님에 대한 소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를 보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속 시원한 대답을 듣고자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마태복음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오히려 더 큰 근심만 얻고서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만만하던 부자청년이
왜 근심만 얻고 돌아갔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까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산산이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이란
바로 이런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것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고민까지 하며 살아야 하느냐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고민은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한 고민은
우리로 하여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과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잠언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성경 잠언이 똑같은 구절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반복한 이유를
깊이 생각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셔서
무엇을 위해 애통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간절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열심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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