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금요일 아침묵상-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John19:30 When he had received the drink, Jesus said, "It is finished." With that, he bowed his head and gave up his spirit.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는
성 금요일(Good Friday)이며
지난 3월 1일부터 시작된
사순절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성 금요일을 맞아
계속되는 마가복음 묵상을 중단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셨던
일곱 말씀(가상칠언 架上七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하신 일곱 말씀은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가
각각 기록하고 있는 일곱 말씀을 모아서
‘가상칠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1.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눅23:34)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며
또한 누군가를
용서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용서가 없다면
하나님과 관계는 물론이고
이웃과의 관계도
완전히 깨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라는 기도였습니다.
2.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눅23:43)
오랫동안 이 말씀은 많은 교인들에게
‘마지막 순간에 하였던 회개’에 대한
예수님의 지나친 선심으로 여겼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을 조롱하던 군중들도
더 이상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일에
싫증나서 흩어졌습니다.
제자들 역시 이미
자리를 뜬 지 오래였습니다.
몇몇 군인들이
예수님의 숨이 멎기를 기다리며
예수님의 옷가지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님,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가장 외롭고 비참했던 순간에
그분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가장 믿어지지 않았을 때
그분을 믿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에게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강도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강도의 이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강도의 이름에
내 이름을 넣는다면,
그래도 이것을
예수님의 지나친 선심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3.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19:26).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은
자신을 핍박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은
생면부지의 강도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세 번째 말씀은
어머니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십자가 밑에는
몇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세 명의 여자들과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생애 동안 한 번도 나서지 않았고
따라서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보다 더
예수님을 깊이 이해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십자가 밑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울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갖게 된 신앙보다
더 굳건한 신앙은 없음을 상징합니다.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해
예수님께서 외치신
마지막 고통의 외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이었습니다.
시편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묵상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비극적이고 고통에 찬
신음과 절규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22:27-28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인이로다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예수님은 정말 육신의 갈증으로
목이 말랐던 것일까요?
예수님을 갈급하게 만들었던 갈증은
신 포도주로 해소할 수 없었던
내적인 갈증이요 영적인 갈증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목마르다 하신
예수님의 갈증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증이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에서 나오는 갈증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외면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인한 갈증입니다.
6. 아버지여,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23:46)
이 말씀 역시
시편 31편 5절의 일부분입니다.
시편 31편 5절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잘 죽는 일이겠습니까?
살았을 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죽음을 앞두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똑같다면
그 사람은 그 누구보다
잘 죽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모든 일을 하느님께 맡기셨던 것처럼
죽음 앞에서도
당신 영혼을 하나님 손에 맡기셨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늘 하나님과 동행하셨던 것처럼
죽음을 넘어서도
그렇게 동행하시리라는 믿음이
이 마지막 말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7. 다 이루었도다.(요19:30)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줍니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 아쉬움 없이
‘잘 살았다. 다 이루었다.’
말 할 수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은
고통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생명이 시작됐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치고 있고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이 분명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이므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말씀을,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이루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곱 말씀을 십자가 위에서 남기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지
세 시간 만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제 부활절입니다.
어둠과 절망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떠한 어둠과 절망과
시련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다시금 회복되고 치유되며
부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한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힘겨운 이민의 삶속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충만히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