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수요일 아침묵상-불편한 예수님의 말씀
마가복음 9:42-48 (개역개정, NIV)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아침묵상을 받아보시는 분 가운데
어떤 한 분이 저에게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보내는 아침묵상을
읽으면 읽을수록
편안하고 축복받는 느낌이기보다는
부담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묵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부담스럽고
힘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비록 마가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하고 있지만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고 불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위안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이나 위로를 얻기 보다는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예수님께 바라고 얻으려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분명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교인들은
하나님을 통해,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부담을 가지거나
불편함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려는 것과
세상이 이루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다릅니다.
세상은 철저하게
승자독식, 약육강식과 같은
성공하거나 승리하거나
출세한 사람만이 잘사는
세상 방식만이 통하는
세상 나라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과 재물과 성공으로
약한 사람, 작은 사람, 실패한 사람과
자신의 것을 나누고 돕고 섬기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조차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세상이 이루려고 하고 세상나라를
예수님을 통해 이루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발을 딛고
세상 방식에 지배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담감이나 불편함 또는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듣고도
아무런 부담이나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심각한 영적 무감각에 빠진
절망적인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도 없는
엄격한 예수님의 기준을
부담이나 불편함을 느끼면서까지
굳이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고 불편한 예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비록 우리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그대로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살지는 못할지라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위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삶의 방향만큼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향을
향해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만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부담감이나 불편함 때문에
우리의 삶의 방향이나 추구하는 가치마저도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만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이 주는
부담감이나 불편함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피하는 것은
우리를 예수님이나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하고 배려한다고 해도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져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결코 이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자에 대해 어떠한 태도나
마음을 가졌든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드러난 결과만 가지고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연약한 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세심한 주의나 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족하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실족한 사람이 있으니까
그 결과에 따라
무조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의도적으로 고의로
연약한 자들, 작은 자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완전하고 완벽한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연약한 자들, 작은 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며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완전하고 완벽한 실행과 실천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완전하고 완벽하게 행동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완전하고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진리의 길이라는 믿음만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완전하고 완벽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믿음으로
그 길을 향해 가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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