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일 수요 아침묵상-어린이와 같이

 

마가복음 10:13-16 (표준새번역, NIV)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는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6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자신의 아이들을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습니다.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물론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을 방해거리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을 치며 소란을 일으켜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방해가 되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축복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역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아이들은

매우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서는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전쟁을 할 수 있는

남자 어른들의 숫자만 세고

그들의 숫자만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한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나름의 이유를 앞세워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심히 노하셨다고

마가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4

그러나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노하셔서 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매우 분노하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매우 강경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분노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여러 가지 교훈과 가르침으로

연약한 자를 섬기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연약한 자를 섬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제자들의 무지와 완악함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노만 하지 않고

또 다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데려온 어린아이들을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하찮고 귀찮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찮게 여긴 어린이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약한 어린아이들을

잘 돌보고 섬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어린이들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구원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통해

구원에 관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구원(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의 믿음이

어른의 믿음보다 좋다는 뜻도 아닙니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믿어야지

어른처럼 복잡하게 믿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어린아이가 뜻하는 것은

순수함, 천진난만함, 순진무구함, 깨끗함,

티 없이 맑고 투명한 마음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해

결코 순수함, 죄 없음, 또는

깨끗함의 상징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어른들과 비슷하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남을 미워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욕심도

정도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죄가 어른들의 죄에 비해

큰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귀엽게 보이고 참을 만한 것이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죄인임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린 아이들의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린 아이의 죄가

어른에 비해 미약한 것은

그들이 순수해서가 아니라

죄를 지을 힘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또한

미숙하고 어리석고 버려야 할 것을

어린 아이의 일에

비유하여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어린아이가 상징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어린아이는

연약한 자에 대한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던 어린 아이는

매우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매우 연약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입니다.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가장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어린 아이와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가장 연약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생존하기 위해선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약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하나님은 그저 가끔씩 내가 필요할 때만

도움만 주면 된다는 식의 신앙은

결코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가장 연약한 자가 된다는 것이고,

 

연약한 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기도

 

어린 아이가

오직 부모의 도움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 믿음 또한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보는

연약한 자의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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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