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일 수요 아침묵상-박해

 

마가복음 10:26-31 (표준새번역, NIV)

26 제자들은 더욱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28 베드로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30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생을 받을 것이다.

31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에게는

장차 세 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0:30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생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는 박해(핍박)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당시

예수님을 따르고 믿었던

사도(제자)들과 초대 교회 교인들은

하나 같이 모두 로마제국으로부터

심각한 박해와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 전부와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수많은 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억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러 나라들 가운데

기독교를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더 이상 기독교를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수많은 나라들에게서

기독교는 가장 힘 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나라에서는

기독교가 가진 막강한 힘과 권세로

다른 종교를 핍박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기독교 복음의 전파라는

좋은 목적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멸시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짓된 교리와 종교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세뇌시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사이비 종교나 우상 신앙의 거짓된 교리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가진 힘과 권세를 이용한

다른 종교나 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박해는

단순히 물리적인 외부의 폭력이나

억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박해는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버린 것으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불편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편안하게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하므로 생겨나는 불편함도

일종의 박해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양보해야 하고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참아야 하고

남들보다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하고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것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신경 쓰게 되고 불편하게 되는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받아야 하는 박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전에는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을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오해합니다.

 

기독교인으로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라는 박해를 짊어지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 많이 누리는 것만을

신앙의 유일한 목표로 삼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전보다 더 많은 물질과 건강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무런 수고와 희생도 없이

천국(영생)까지 거저 얻으려고 합니다.

 

물론 천국(하나님 나라)

사람의 수고와 희생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상 살면서 자기 좋아하는 것은

단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천국까지 거저 얻으려고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지 기독교인의 마음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주시고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하려고 합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복과 도우심을

오직 재물의 축복으로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어른들의 경우는 대개

내가 시작한 사업에 대박이 나거나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승진을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내 삶에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대개

학업 성적이 올라가거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거나

월급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내 삶에 역사하셨다고 믿습니다.

 

계획했던 일들이 형통하고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

비싼 집에서

비싼 옷 입고

비싼 음식 먹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좋은 환경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환경들을 위해

예수를 믿고 복음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을 믿는 것이며

세상 나라를 믿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하고 복음을 위하는

가장 일차적인 증거는 박해입니다.

 

과연 내 신앙의 여정에는

예수님으로 인한 박해가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신앙의 증거입니다.

 

내 신앙의 여정에

예수님으로 인한 박해가 없다면

예수님으로 인한 불편함이 없다면

아직도 우리는 복음을 위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기꺼이 짊어지려는

자기 십자가가 있을 때에는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증거는

세상에서의 승승장구와 형통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떤 불편함을 감당하고 있느냐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있다는 영적체험을

가장 강력하게 느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내가 계획한 대로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갈 때였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위한

불편함이나 고난을 감당하였을 때였습니까?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불편함이 나에게 하나라도 있는지

우리의 신앙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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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