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수요일 아침묵상-야고보와 요한의 요구2
마가복음 10:35-40 (표준새번역, NIV)
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37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다른 제자들 모르게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장차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자신들을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부탁은
예수님이 장차 이루실 일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탁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왜
예수님이 마시려고 하는 잔과
예수님이 받으시려는 세례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을까요?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만 하면
유대의 권력을 잡을 것이라는 욕망이
야고보와 요한의 눈과 귀를 가리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 번의 수난예고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욕심과 욕망이
눈과 귀를 가리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욕심의 눈과 욕망의 귀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려고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다른 제자들보다 특별하게
권력욕이 심했거나 욕심이 많았던
제자들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들에게서 발견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섰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섰으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보다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념을 따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근거로 가졌던 메시아 신앙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아 신앙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가 오면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을 온 세상을 통치하는
최고의 나라로 만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이제까지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겪어야 했던 모든 어려움은 사라지고
많은 부와 권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소망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요구한 것도
이러한 메시아 신앙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수고와 희생에 대해
보상받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 신앙에 비추어 본다면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일면 타당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심각한 문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면
당연히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메시아 신앙을 따랐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 사역하면서도
예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신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잘못된 믿음과 확신을 따르려고 했으며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더 많이 믿고 따르는 것은
시대의 풍조나 권력자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에베소서 2:2
그 때에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바라고 추구하는 대부분이
어디에서부터 비록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의 풍조이며
세상의 권력자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오늘날 우리 대부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물질(돈)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조차
물질(돈)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세상의 풍조는
사람의 가치 기준을 그 사람이 가진
물질(돈)으로 판단합니다.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사람답게 사는 것 또한
그 사람이 가진 물질(돈)이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시대에
물질(돈)이 가진 엄청난 힘이며
우리 시대의 풍조입니다.
돈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하고 엄청난 힘을 가졌습니다.
세상은 매일같이
돈이 가진 강력한 힘을
우리가 접하는 모든 매체를 통해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의 흐름입니다.
이것을 벗어날 방법이 도저히 없습니다.
이 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된 시대의 흐름에
기독교 신앙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신앙은
세상의 풍조에 의해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시간과
세상의 문화를 가까이하는 시간은
도무지 비교할 수도 없이 차이가 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아마도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시간보다
TV나 인터넷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세상의 풍조나 흐름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겸손하고 순전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살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세상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삼게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왜
세 번째 수난 예고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요구했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이루실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메시아 신앙에만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맛대로 주무르기 시작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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