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목요일 아침묵상-잔과 세례
마가복음 10:35-40 (표준새번역, NIV)
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37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다른 제자들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자신들을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만 하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라
생각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길은
야고보와 요한이 생각하고 믿은 것처럼
승리와 영광을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수치와 조롱의 받으려는 길이며
고난과 죽음을 당하려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이 장차 가려는 길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하고
엉뚱한 부탁을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냐고
저들에게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야고보와 요한이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잔과 세례는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예수님이 받는 세례는
저들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예수님이 받는 세례를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같이 고난과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잔과 세례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의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0: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이
잔과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대답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제자들을
동참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세상을 위한 대속적인 사명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세상을 위해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의 삶을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겪어야 할 고난과 죽음을
대신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세상을 위한 대속의 사명은
곧 우리의 사명이며 책임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과 고난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성도들이 세상에서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과 고난은
세상의 타락과 죄를 담당하기 위한
대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왜 고난과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물질(돈)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르게 키워야 하기에
불편함과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직장이나 사업에서도
세상 사람들의 방식이 아닌
예수님의 방식식대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비난을 받는
불편과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세상에서 마땅히 가야 하는 신앙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받는 세례에
동참시키신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강제적으로 그 길을 가도록
강요하신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받는 세례에
동참시키신다는 말씀은,
제자들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자발적으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도록
저들을 변화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답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또한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직접 보고나서는
그들의 신앙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급하고 과격한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제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헤롯의 손에 순교를 당합니다.
사도행전 12:1-2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야고보의 동생 요한은
비록 순교를 당하진 않았지만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하는 등
숱한 고통과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에 보내 편지입니다.
요한일서 3: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였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 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남들보다 높은 자리를 요구하던
야고보와 요한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예수님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마신 잔과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에 동참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놀라운 변화가
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욕심 많은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이나 수고를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