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금요일 아침묵상-대속물
마가복음 10:35-40 (표준새번역, NIV)
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37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예수님을 몰래 찾아와서는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요구하는
야보고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물으신 잔과 세례는
장차 예수님이 겪으실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스스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시려고 하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예수님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죽음입니다.
이것을 대속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어서
사람을 사고 팔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노예로 있는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주인에게 노예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몸값을 치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사망과 악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과 죄로 인해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습니다.
우리의 타락과 죄로 인해
마땅히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예수님이 대신 겪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겪으신
대속의 고난과 죽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실 모든 고난과 죽음은
사람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이해하지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이것이 장차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이었고
예수님이 받으려는 세례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화해를 시도하려고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때를 맞추어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이미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로마서 5: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이것이 로마서가 가르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입니다.
세상에서는 의인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이 드물고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으려고 나서는 사람도 드뭅니다.
그런데 하물며 죄인을 위하여
어느 누가 앞장서서 죽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경건하지 않은 사람과 죄인과
하나님과 원수 되 었던 사람들을 위하여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장차 야고보와 요한과 제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할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이
어떠한 삶이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희생해야 할 대상,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가 세상을 섬기고 희생하려고 할 때
우리가 섬기야 하는 세상과 사람들은
아직 불경한 사람들이고
아직 죄악에 물들어 있으며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의 섬김과 희생은
그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런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고
그런 세상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세상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결코 싸움과 대결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다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물론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인양
이기적 욕심과 탐욕스런 행동을 하며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러한 세상과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싸우고 이겨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들이 아닙니다.
선교나 전도는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나 전도는
세상을 위해 어떤 사역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졌느냐가
훨씬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선교와 전도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경건하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 갈 때
우리와 싸우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는 우리를
심판과 멸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결과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을 구원하는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를 원한다면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는 것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낮아지고
내가 먼저 섬기고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물로 자신을
세상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 줄 때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사람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자신을 세상과 이웃을 위해
대속물로서 중보자로서
내어 놓는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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