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금요일 아침묵상-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2
마가복음 10:46-52 (표준새번역)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부르며 말하기를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하였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라는 지역에서
눈먼 거지 바디매오를 만나는 사건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에 대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사건입니다.
여리고 지역에 살던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는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예수님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0: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님,
즉 메시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과 동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치는 바디매오를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러했을 것입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에워싸 있어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힘들게 보입니다.
더구나 눈이 먼 바디매오가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예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만약 그가 사람들을 제치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면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밀려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눈먼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목소리를 높여
예수님을 부르는 길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눈먼 바디매오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며
소리를 지릅니다.
눈먼 바디매오가
고함을 지르며 예수님을 부르자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야단을 칩니다.
많은 사람들의 책망에도
바디매오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눈먼 바디매오는
어떠해서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예수님을 불렀지만
예수님 주변을 에워싼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방해한다며
바디매오를 비웃거나 꾸짖었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책망 때문에
한편으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디매오가 마주한 상황은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한
초대교회 교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예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군대를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라 믿었던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히려 로마 군대와 종교지도자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고는 하지만
이것을 직접 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로마군대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신앙의 자유는 주어졌지만
세상의 방식이 우선되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해선
손해를 봐야 하고
때론 억울함도 당해야 합니다.
주변의 조롱과 비웃음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떠해서든 남을 밟고 눌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경쟁상대가 아닌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에게 시끄럽다고 책망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살고자 하면 할수록
세상은 그것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하고 업신여기고 비웃습니다.
시끄럽다고, 떠들지 말라고
너 혼자 잘난 척 하냐고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먼 거지 바디매오의 행동이
여기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들의 조롱과 책망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여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마가복음 10:48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더욱 치열하게,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사는 것입니다.
더욱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의 믿음에 찬 행동은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했으며
마침내 그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 된 바디매오는
네 갈 길을 가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마가복음 10: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고 했을 때,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 예수님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 예수님을 믿을 때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를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수단으로 이용해서
자신들의 부귀영화나 누리겠다는
종교적 탐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신앙은 예수님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게 만드는
거짓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더 많은 교인들을 교회로 모아야 한다는
교회성장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값싼 은혜와 믿음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너무도 쉽게 여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며
심지어 필요하다면
죽음마저도 감당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가
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가르치는 교회들이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까지
이미 우리 대신 다 지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믿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만 받으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은 성경에 없습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내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으로
믿는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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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