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월요일 아침묵상-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마가복음 10:46-52 (표준새번역)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부르며 말하기를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하였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마가복음에는
장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겪으실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가
세 번에 걸쳐 반복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예고”라고 합니다.
수난이란
단순히 고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는 것을 수난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세 번에 걸친 예수님의 수난예고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도에 관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세 번에 걸친 예수님 수난 예고 말씀은
세 번 모두 거의 비슷한 패턴(pattern)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은 수난예고를 듣고도
조금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심지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를 놓고
제자들끼리 서로 권력 다툼을 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를 듣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제자도: 제자가 가야 할 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도는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으며,
세상의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이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연약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고,
자신을 세상을 향한 희생 제물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에 걸친
수난예고의 결론으로
세 번 모두 믿음과 관련된 사건으로
끝을 맺습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에서
마가복음이 결론으로 기록하고 있는
마지막 사건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9:14-29절 참고)
예수님이 변화 산에 올라간 사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어떤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변화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지 못한 제자들을 보면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탄식합니다.
할 수 있으면 고쳐달라는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할 수 있으면’이 무엇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간청합니다.
아버지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선
귀신 들린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십니다.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의 표식인 ‘기도’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첫 번째 수난예고가 끝나게 됩니다.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
마가복음이 결론으로 기록하고 있는
마지막 사건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0:17-31절 참조)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그가 가진 재물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는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자신이 가진 재산이 너무나 많았기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켰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부자 청년은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을 믿은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구했지만
영생을 얻는 길을 듣고도
영생을 얻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많은 재물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에서
마가복음이 결론으로 기록하고 있는
마지막 사건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며칠 째 묵상하고 있는
눈먼 거지 바디매오에 관한 사건입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는 지역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방해와 책망에도
포기하지 않고 외치는
그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신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디매오는
제 살길을 찾아 가지 않고
그 즉시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눈을 뜬 즉시로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 나왔던 부자 청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부자 청년은
믿음이 없어서 영생을 얻지 못했지만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이 있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부자 청년은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지만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세 번에 걸친 수난 예고의
결론으로 기록된 사건은
세 번 다 다른 사건입니다.
하지만 비록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세 사건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습니다.
세 사건의 공통된 주제가 무엇입니까?
비록 서로 다른 세 사건이지만
세 가지 사건 모두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예수님이 가려는 십자가의 길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같이 연약하고 탐욕스런 사람이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이나 돈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만 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으로
예수님이 가신 고난과 죽음의 길을
우리가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단지 종교적 열정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은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남발하는
종교적 열광이나 흥분이 아닙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켰다는 부자 청년,
그리고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할 때에만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말로만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내 십자가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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