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일 화요 아침묵상-바디매오의 믿음

 

마가복음 10:46-52 (표준새번역)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부르며 말하기를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하였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찾아 영생을 물었던 부자 청년의 이야기와

(마가복음 10:17-22 참조)

한편으론 매우 비슷하기도 하지만

정반대의 결론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와의 비교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영생을 물은 부자 청년과

예수님을 소리쳐 불렀던 바디매오에게는

매우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비록 처한 상황과 문제는 달랐지만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들이 가진 가장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고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시끄럽다고 조용하라고 꾸짖는

많은 사람들의 책망에도 불구하고

더욱 소리 높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두 사람의 모습은

예수님이 하도 유명하다고 하니까

속는 셈치고 한 번 찾아나 가보자는

태도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진지하고 심각하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반면에 이 두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물은 청년은

부자였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 청년은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마디로 이 사람은

사회적 신분이 높았고

재산도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명을 잘 지켰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종교적 의무도 충실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당시 유대사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성공한 청년입니다.

 

반면에 바디매오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루하루 구걸해야만

겨우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불쌍한 거지였습니다.

 

구걸하며 먹고 살아야 했던 거지가

율법을 잘 지키는 종교적 의무를 다하며

살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당시 유대 사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여겨졌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의 삶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완전히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통해 그토록 원하던

영생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자 청년은

영생에 대한 답을 찾고도

오히려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슬픈 기색을 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반면에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자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인

겉옷을 벗어 버리고는

예수님 앞으로 달려갑니다.

 

마가복음 10: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겉옷은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거지에게 겉옷은

한 밤중 거리의 추위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유일한 도구였으며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자

바디매오는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겉옷을 벗어 버리고는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눈을 고쳐 주시고는

네 갈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자기 갈 길을 가지 않고 그 즉시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섭니다.


마가복음 10: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자

다른 대부분의 병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 살 길을 찾아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 살길 찾아 떠나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고난과 죽음의 길을 따라 나섭니다.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는 모두

자신들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만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 받았고

부자 청년은 오히려

더 큰 근심만 얻고 돌아갔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이처럼 극명한 차이가 생겨난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자 청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자신이 가진 많은 재물이었습니다.

 

반면에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들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실 분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부자 청년이나 바디매오처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에게 닥친 절박한 문제를

해결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것은

얄팍한 처세술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른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면

비록 예수님께서 주신 해결책이

자신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찾은 사람이

가져야 하는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해결책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부자 청년의

이야기만이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 역시

부자 청년과 비슷한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반면에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예수님을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바디매오야 말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구세주가 되심을

분명히 깨닫고

더욱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을 얻는 것보다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 두 번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인생에 또 다른 문제가 없을 순 없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또 다른 인생의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 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당장의 문제 해결보다는

영원한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결국 가장 유익한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