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일 수요 아침묵상-바디매오의 믿음2

 

마가복음 10:46-52 (표준새번역)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부르며 말하기를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하였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와의 비교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는 모두

자신들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눈먼 바디매오만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 받았고

부자 청년은 오히려

더 큰 근심만 얻고 돌아갔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이처럼 극명한 차이가 생겨난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가진 많은 재산 때문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눈먼 거지 바디매오가

자신의 전 재산인 겉옷마저 벗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세상에 가진 것 많고,

세상에 의지할 것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가 매우 힘듭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기에는

그 누구보다 쉬울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어려서부터

부자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한

친교모임쯤으로 여기며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많은 것이

교회를 다니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자랑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는 너무도 쉽습니다.

자랑스럽게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포기해야 하고 버려야 하고

낮아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이 너무나 많아

예수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것을 쌓아놓고 살기에

예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25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은 결코

가난한 자들은 무조건 천국에 가고

부자들은 무조건 지옥 간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눈먼 거지 바디매오는

눈먼 거지라는 조건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의존했기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자기가 가진 지위와 재물이 걸림돌이 되어서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더 많은 물질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를 넘어선 물질()

우리를 잘 살게 만들기 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는

물질을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는 그저 가난한 삶만

살아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왕이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고,

이런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더 많이 가져야만

더 많이 얻어야만

더 높이 올라가야만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번에 병만 낳게 해주시면,

이번에 진급만 시켜주시면,

이번에 월급만 더 올라가게 해 주시면,

이번에 사업만 대박이 나게 해 주시면

하나님을 더욱 잘 믿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고 생각하는

물질과 권세를 믿는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의 이야기에서

매우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자 청년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눈먼 거지의 이름은

그 아버지의 이름까지 포함해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6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이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유대 종교문화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름이라는 표현이

무려 924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 지워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자 청년의 이름은

성경에서 기억되지 않고 지워졌습니다.

 

반면에 눈먼 거지의 이름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남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높았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에서 가졌던 것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이름이

결코 기억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들어

무시와 천대를 당하며 살았다고 해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이름이

하늘의 해와 달처럼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름을 드러낸 자는

그 이름이 잊힐 것이고

그 이름이 감추어진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31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자 청년과 눈먼 바디매오의 삶은

마가복음 10:31

예수님 말씀의 성취이자 적용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평가와

이 세상에서의 기득권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그대로

연장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관점과 가치관으로 보면

도저히 승리할 없고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가치관과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세상에 속하여 살면서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제자의 삶이

불가능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직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과 권력과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떤 믿음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 하지만

정작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믿었던

세상의 물질과 성공과 건강이 아니었는지

정직하게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