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일 목요 아침묵상-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1

 

마가복음 11:1-11 (표준새번역, NIV)

1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 근처인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 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4 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 길 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웬일이오?"

6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7 제자들이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 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타셨다.

8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분!"

10 "복되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거기에서 모든 것을 둘러보신 뒤에,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다.

1 As they approached Jerusalem and came to Bethphage and Bethany at the Mount of Olives, Jesus sent two of his disciples,

2 saying to them, "Go to the village ahead of you, and just as you enter it, you will find a colt tied there, which no one has ever ridden. Untie it and bring it here.

3 If anyone asks you, 'Why are you doing this?' tell him, 'The Lord needs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shortly.'"

4 They went and found a colt outside in the street, tied at a doorway. As they untied it,

5 some people standing there asked, "What are you doing, untying that colt?"

6 They answered as Jesus had told them to, and the people let them go.

7 When they brought the colt to Jesus and threw their cloaks over it, he sat on it.

8 Many people spread their cloaks on the road, while others spread branches they had cut in the fields.

9 Those who went ahead and those who followed shouted,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10 "Blessed is the coming kingdom of our father David!" "Hosanna in the highest!"

11 Jesus entered Jerusalem and went to the temple. He looked around at everything, but since it was already late, he went out to Bethany with the Twelve.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하는 길에 일어났던

세 번의 수난예고의 말씀과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묵상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종교의 중심지이며

왕궁이 있는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수많은 유대백성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로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유대백성들의 기대와 믿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향해

환호하며 외치던 구호입니다.

 

마가복음 11:910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수많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아이자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새로운 왕으로서

입성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하는

수많은 유대백성들의 기대와 믿음은

정작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예수님의 목적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라고

이미 오백 년 전에

스가랴 예언자가 예언하였습니다.

 

스가랴 9:9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예수님도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고,

 

제자들과 군중들 역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라고 환호하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맞는 군중들과

스스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예수님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세 번의 수난예고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에 대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가

또다시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제자들이나 군중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오백 년 전에 무너져버린 다윗의 왕권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군중들은

겉옷을 벗어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아 예수를 환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므로,

제자들과 군중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메시아로 오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천 년 전의

제자들과 군중들의 오해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믿음을 그래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은, 메시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분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기대하고 믿는 그리스도는

오로지 자신의 꿈과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상과 사람들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메시아를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세상이 평화를 이루는 방식이 무엇입니까?

 

세상은 남들보다, 다른 나라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져야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은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왕은

병거가 있어야 하고

군마가 있어야 하고

창과 칼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병사와 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므로

세상의 왕과는 전혀 다른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만 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무슨 전쟁을 하겠습니까?

 

어린 나귀를 타고

무슨 혁명을 일으키겠습니까?

 

어린 나귀를 타고

로마의 강력한 군대를

어떻게 무찌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것은

겸손과 온유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병거와 군대와 권세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처럼

공의로운 왕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왕으로

겸손하신 왕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은

교회가 가진 힘과 재물과 권세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의와 구원과 겸손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이 칼과 창으로 위협할 때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칼과 창을 들고 싸운다면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닙니다.

 

남이 나를 욕하면

나도 욕하고,

 

남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면

나도 손해를 끼치고,

 

남이 나를 업신여기면

나도 똑같이 업신여기는 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로 드러난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많이 양보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손해를 보아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죽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것만이 예수님의 제자됨을

세상에 증명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 말고는 예수님의 제자됨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세상에 선포하고 드러내는 것은

더 큰 힘과 더 높은 권세와

더 많은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처럼

겸손과 섬김과 희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