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일 목요 아침묵상-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가복음 12:41-44 (새번역, NIV)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41 Jesus sat down opposite the place where the offerings were put and watched the crowd putting their money into the temple treasury. Many rich people threw in large amounts.

42 But a poor widow came and put in two very small copper coins, worth only a fraction of a penny.

43 Calling his disciples to him, Jesus said, "I tell you the truth, this poor widow has put more into the treasury than all the others.

44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all she had to live on."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과부의 재산을 삼키며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성전 헌금함이 있는 곳

건너편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하는 가를

자세하게 지켜보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나팔처럼 생긴 헌금함이

무려 13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13개의 헌금함은 각자

다른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한

헌금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용되던 돈은

지금과 같은 종이로 만든 지폐가 아니라

, , , 청동으로 만든 동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팔모양의 헌금함에

사람들이 동전을 넣으면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통해

대충 그 사람이 얼마를 헌금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무슨 동전이냐에 따라

몇 개의 동전을 넣느냐에 따라

헌금함에 동전을 넣었을 때

떨어지는 소리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나팔 모양의 헌금함을 만들어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통해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를 넣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 것은

아마도 성전을 관리하던

제사장들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헌금함에 넣는 소리만 듣고도

모든 사람들이 알아 챌 수 있도록

헌금함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헌금하는 소리를 듣게 하고 알게 하여

헌금하는 것을 경쟁하게 만들거나

자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헌금함에 동전을 넣는 것을

경쟁하거나 자랑하게 해야

더 많은 헌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시는데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는

부자들이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헌금함 앞에 서더니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렙돈은 그리스(헬라) 동전으로

그리스의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이었으며

고드란트는 로마의 동전으로

로마의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동전 두 렙돈은

로마의 동전으로는 한 고드란트로

아주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다임이나 백 원짜리 같은

작은 동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 여러 사람이

아주 많은 헌금을 하는 모습과

가난한 한 과부가

아주 적은 헌금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2:43-44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이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는지

좀처럼 이해하고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신학자나 목사들 사이에서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해석과 주장을 합니다.

 

대다수 신학자나 목사들이

선호하는 해석과 설교는 이렇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부자의 헌금이 훨씬 더 많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과부가 훨씬 더 많은 헌금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자는

자신이 가진 많은 재산 가운데

아주 적은 일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모두 드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던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해

칭찬하셨다고 해석하고 설교합니다.

 

물론 가난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은

마땅히 칭찬 받아야 하는

선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해석과 적용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에서 벗어나

잘못 사용될 수 있는 위험이 큽니다.

 

실제로 많은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헌금을 권고할 때면

이 말씀을 이용하여 설교합니다.

 

가난한 과부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아끼지 않고 바쳐서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는데,

여러분들은 무엇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과부처럼

가진 것 모두 하나님께 바쳐서

예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께 축복받는 교인이 됩시다.

 

많은 경우 목사들이

이런 식으로 설교합니다.

 

특별히 교회를 건축할 때면

결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흥사들의 단골 레퍼토리(repertory)입니다.

 

반면에 이런 해석을 거부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사건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신학자나 목사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가난한 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향해

과부들의 가신을 삼키는 자들이라며

엄중히 비판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율법은 너무나 분명하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구제하고 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가르친다는 율법학자들이

과부의 불쌍한 형편을 이용해서는

과부들에게 남겨진 적은 재산조차도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들을 돕기는커녕

저들의 가산마저 빼앗는 율법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더 엄중하고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체를 바친 것을

칭찬했다고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은

 

과부들이 가산을 삼키는

율법학자를 책망하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의도가

생활비 전부를 바친 과부의 행위를

칭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 많은 헌금을 모으기 위해

나팔모양의 헌금함을 만들어 놓은

성전 제사장들과 다른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겠습니까!

 

생활비 전체를 바쳤으니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을 것이라고

치켜세우는 설교자들과 다른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과부의 지나친 헌금을

예수님께서 칭찬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있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라 주장합니다.

 

어떤 식의 성경해석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의 말씀을

내 의도나 목적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하지 않고

말씀하신 의도와 목적을 찾아내어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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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