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일 금요 아침묵상-성전의 타락

 

마가복음 12:41-44 (새번역)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에 걸친

수난 예고를 마치시고는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셔서

여러 가지 말씀으로

성전에 모인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을 나와서는

베다니에서 주무셨습니다.

 

다음날 또 다시 성전을 향하시다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을 통해

성전의 파괴와 심판을 예언하십니다.

 

성전에 들어가서는

이방인의 뜰을 독차지하고는

돈을 바꾸고 장사하는 이들을

쫓아내어 성전을 정결케 하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책잡으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성전에서 다섯 번에 걸친

격렬한 논쟁을 벌입니다.

 

다섯 번에 걸친 논쟁 이후

더 이상 예수님께 묻는 이들이 없자

이젠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의

잘못된 메시아 신앙을 비판하시고,

그들의 위선과 탐욕을 책망하십니다.

 

탐욕과 위선에 가득 찬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

경고하시고 책망하십니다.

 

또한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믿음을 가르치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을 이용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그 어떤 기대나 미련도 없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모든 논쟁과 가르침을 마치시고

성전을 떠나시며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의 거대함과 웅장함을 보고는

놀라며 경탄을 했지만

막상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성전의 완전한 파괴를 예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건물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하나님의 죄 사함과 은혜를 받는

가장 거룩하고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전이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에 의해

심하게 변질되고 타락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는

그 어떠한 회복의 희망도,

진실한 믿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성전 신앙의 타락을

그대로 두실 수 없으셨던

성전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마침내 성전의 파괴와 심판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전후 배경에서

가난한 과부가 성전 헌금함에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은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앞뒤 전후 배경을 무시한 채

이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게 되면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뒤 전후 배경에서

이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게 되면

이것은 결코 과부의 헌신과 믿음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대부분의 왜곡은

성경의 앞뒤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이

특정한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처음 성경이 기록되었을 때에는

성경에는 지금과 같은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의 구분은

파리의 인쇄업자 스테파누스가

1560년 발행한 제네바 성서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는

최소한 성경의 앞뒤 배경을 알고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엉뚱한 해석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마가복음 111절부터 132절까지

성전에서 연속해서 벌어진

사건의 하나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의 말씀이기 보다는

성전의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비록 로마의 식민지였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크고 웅장했으며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부를

소유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과 근처에 살던 부자들이

정기적으로 상당한 헌금을 했으며,

절기마다 성전을 방문한

유대백성들과 상인들이 내는 헌금도

엄청났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이 낸 헌금에 대해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헌금함에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넉넉함으로 번역된 단어는

풍족함 혹은 남아도는 것

의미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성전에 낸 헌금으로

그들의 생존이 위협당하거나 혹은

재산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수억, 수십억, 혹은 수백억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몇 백만 원 헌금 했다고 해서

재산이 축나지는 않습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에게는

몇 백만 원은 아주 큰돈이겠지만

부자들에게 몇 백만 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입니다.

 

부자들의 헌금으로

성전과 제사장들의 부는 쌓여갔고,

부자들은 자신들이 낸 헌금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받았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제사장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헌금을 많이 하도록

하나님의 축복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헌금을 내게 하도록

나팔 모양으로 소리가 나는

헌금함을 만들었습니다.

 

얼마짜리 동전을 넣었는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교묘하게 헌금함을 만든 것입니다.

 

비싼 동전을 헌금함에 넣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우쭐할 수 있게 해서

다른 사람들도 비싼 동전을 넣도록

경쟁하게 만든 것입니다.

 

심지어 성전의 제사장들은

더 많은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성전에서 일하던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책임과 사명을 저버리고는

오로지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성전을 제멋대로 악용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경험해야 할 성전이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타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

즉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오늘의 기도

 

종교지도자들과 성전의 타락을

또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더욱 깨어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