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일 월요 아침묵상-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마가복음 12:41-44 (새번역)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 될 수 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읽으면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 이야기 앞뒤로 나오는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에 대한

연장선에서 읽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생활비조차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라는 명분과

종교제도를 앞세워 빼앗아 가는

성전제도의 타락과

종교 지도자들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도 성전에 왔지만

가난한 자들도 성전에 왔습니다.

 

성전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믿음의 고백으로

성전에 있는 나팔 모양의 헌금함에

헌금을 했습니다.

 

부자들이 금화(금 동전)

나팔 모양의 헌금함에 넣으면

헌금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헌금함에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값비싼 금화를 넣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많은 헌금을 내는 부자들을 축복했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하는

신앙의 모범자로 추켜세웠을 것입니다.

 

성전을 방문한 사람들은

헌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을 보면서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백성은

부자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아

부자가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부자가 남들 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은 받은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믿음은

헌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을 추켜세운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생겨난 믿음일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가난하거나 평범한 유대 백성들에게

 

부자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헌금을 많이 내며 하나님을 잘 믿었기에

부자가 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부자들처럼

하나님께 더 많은 헌금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들은

가난한 과부는 자신도 부자들처럼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아

비록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난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가진 전부였던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어 하나님께 드립니다.

 

당시 두 렙돈, 한 고드란트는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돈이었습니다.

 

두 렙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겨우 한 주먹의 곡식가루입니다.

 

한 주먹의 곡식가루는

가난한 과부의 한 끼 식사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적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두 렙돈 전부를

성전 헌금함에 넣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성전 헌금함에 넣은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두 렙돈은 누구에게로 갔을까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성전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드린다는 명분을 앞세워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가난한 과부의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생활비조차 빼앗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과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타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라고

엄히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2: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구약성경의 말씀(율법)에 따르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에 나타난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실천해야 했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앞장서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했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헌금을 명분삼아

가난한 과부의 생활비조차 빼앗은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할 성전이

탐욕스런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조차 착취하는

종교적 수단으로 악용된 것입니다.

 

이러했기에 예수님은

더 이상 성전과 성전신앙에는

희망이 없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지고 파괴되고

심판받아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마가복음 13: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많은 교인들이 착각하기를

자신이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하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시다고

사람의 돈을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사람이 사용하는 돈이 아니라

돈을 구별하는 믿음만 받으시고

돈은 교회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신 것도

이런 의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자들보다 가난한 과부가

실제로 더 많은 돈을

헌금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헌금을 드리는 믿음에 있어서는

가난한 과부가 부자들보다

더 큰 믿음을 보여주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사람이 드리는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돈을 무엇을 위해 쓰는지

돈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삶의 방식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어

돈을 바르게 쓰는 믿음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