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수요일 아침묵상-배우고 훈련하는 사랑
로마서 7:18-19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나에게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I know that nothing good lives in me,
that is, in my sinful nature.
For I have the desire to do what is good,
but I cannot carry it out.
For what I do is not the good I want to do;
no, the evil I do not want to do—this
I keep on doing.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이자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영성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 사랑은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영성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조차
사랑은 배우고 훈련하고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쯤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에는
사랑에 대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가장 잘못된 생각은
사랑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에 있어 감정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감정에만 의존하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이나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랑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마치 활활 타는 장작과 같습니다.
아무리 활활 타는 장작이라고 할지라도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싸늘한 재로 변하고 마는 것처럼,
불타올랐던 감정에만 의존하는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식어버립니다.
감정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또한 수시로 변하는 것이 감정입니다.
오늘 좋았다가도
내일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반대로 오늘 나빴다가도
내일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화학현상과 같은 것입니다.
호르몬이 사라지면
연기와 같이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을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감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인간의 감정에 의한 것이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인간의 감정에 의한 것이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인간의 감정에 의한 것이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호감도 없는 사람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선한 의지이며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사람에 대한 선한 의지라고 한다면
이 사랑을 위해선
반드시 노력과 훈련이 요구됩니다.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이나 훈련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랑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고 착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랑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로 생각하기 보다는
사랑받는 문제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며,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와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가 매주 부르는 찬양처럼
형제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 형상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인도 빈민들의 성자라고 불렸던
마더 테레사 수녀가
50년간 인도의 빈민들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던
영적비결이 무엇일까요?
마더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모습 속에서
신의 형상을 보게 해 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하였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하고 존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나는 무시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시하는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사랑을 나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달린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일단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사랑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 않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었던
율법 교사처럼,
내 주변에는
나의 사랑을 받을 만한
마땅한 대상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누가 내 이웃일까?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사랑이
자신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달린 문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사랑을 베풀 만한 이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이웃을 찾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새롭게 시작한 201년 새해가
복 있는 한 해가 되길 원하신다면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더욱 열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호르몬에 의해 좌우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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