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금요일 아침묵상-복 있는 사람2
시편 1:1-6 (새번역, NIV)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갓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그 때에 얼굴을 들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서지 못한다.
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1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of sinners or sit in the seat of mockers.
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3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4 Not so the wicked! They are like chaff that the wind blows away.
5 Therefore the wicked will not stand in the judgment, nor sinners in the assembly of the righteous.
6 For the LORD watches over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wicked will perish.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므로 얻게 되는 복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복입니다.
세상이 주로 강조하는 복은
이전 보다 더 많은 돈이나
재산을 가지는 소유의 복입니다.
반면에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람이 변화되고 구원받는
존재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복이
물질이나 돈과 같은 소유에 있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은
사람이라는 존재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어디에도
무엇을 소유하거나 얻었기 때문에
복이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은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 1편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복을 받으라고 하지 않고
복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팔복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복에 대한 성경의 원리입니다.
“복” 혹은 “축복”이라는 단어처럼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고
왜곡되는 개념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과 물질이 우상이 된 사람들은
복이라고 하면 무조건
돈이나 재물의 풍요로만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돈이 많은 부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잘못된 신앙을 믿습니다.
하지만 시편 1편의 말씀이나
산상수훈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성경이 말씀하고 강조하는 복은
물질이나 돈 같은 것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묵상하는 시편 1편에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복은 받는 게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자식이 많거나 부자이거나
출세하거나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교만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이 가르치고 있는
복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교만한 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유일한 비결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단지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내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세상에서 형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부정직한 사람에게 피해를 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불의한 사람들에 의해 핍박을 받으며,
겸손한 사람이
교만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이 형통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의인보다 악인이
더 형통하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시편 1편의 말씀은
도무지 현실적인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형통함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도 있지만
세상이 주는 형통함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정직하지 않아도, 성실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부유할 수 있고,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악인의 형통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악인의 형통함으로 인해
실족하여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대부분의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이나 실패 때문에 실족하기보다는
오히려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더 많이 실족하고 넘어집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지금까지 애써 지켜왔던
믿음의 원칙들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세상은 믿음의 사람에게
고난이나 핍박과 박해를 가하는 것으로
그들을 넘어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오랜 기독교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전략을 바꿔
조금만 부정직해지면,
조금만 비겁해지면,
조금만 비굴해지면
세상 살기가 쉽다고 가르칩니다.
악인의 형통함은
세상과 사탄의
가장 강력한 전략입니다.
당장 보기에는
악인들이 형통하고,
죄인들이 승승장구하고,
교만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과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사람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에
인생의 초점을 둘 수만 있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악인들의 형통이
별로 대단한 것이 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한 해 동안도
복 받는 일에 힘쓰기보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복을 많이 받은 사람보다
우리를 더욱 존귀하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복은
더 많은 것을 받는 것에 있지 않고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닫고 믿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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