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목요일 아침묵상-예수님의 인성
마가복음 14:32-36 (개역개정, NIV)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2 They went to a place called Gethsemane, and Jesus said to his disciples, "Sit here while I pray."
33 He took Peter, James and John along with him, and he began to be deeply distressed and troubled.
34 "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he said to them. "Stay here and keep watch."
35 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to the ground and prayed that if possible the hour might pass from him.
36 "Abba, Father," he said, "everything is possible for you.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십자가의 길을 눈앞에 두고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한
힘든 심정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당신의 고민이나 괴로움을 드러내거나
말씀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에게
마음에 있는 고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4:33-34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을 만큼 힘든 당신의 솔직한 심정을
숨지지 않고 고백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하나님께
할 수만 있으면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시며 머뭇거리는
예수님을 굉장히 낯설어 합니다.
심지어 일부 교인들은
예수님답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인간의 연약한 모습 따위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전능하신 신으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 역시 단 한 번도
스스로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심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연약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수치로 여기고 부끄러워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렇다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메시아의 사역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연약한 인간이셨으며
연약한 인간이심을 인정하셨기에
연약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사셨으며
인간을 구원하는 메시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스스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셨기 때문에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님과
하나님 아들로서의 예수님이
합체를 이룬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십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로서의 예수님이시고,
하나님 아들로서의 예수님이
인간 예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 것은
인간 예수의 기도이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간구한 것은
하나님 아들로서의 기도라고
해석하는 것은 억지이며 왜곡입니다.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한 것도
예수님이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간구한 것도
예수님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 대부분은
예수님의 신성에만 초점을 두고
예수님의 인성은 무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면
인본주의 신앙이라고 비난하면서
마치 예수님의 신성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예수님의 인성을 외면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핵심은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신비는
기독교 복음의 시작이며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입으로는 성육신을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는 외면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면
마치 위험한 인본주의 신앙인 것처럼
비난하려고만 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하게 되면
내 삶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저 내세의 안락한 삶만을 약속해 주는
그런 종교로 전락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신에게
정성을 다해 내 소원을 기도하고
신은 인간의 정성에 감동되어
인간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그렇고 그런 종교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다를 바 없는
그렇고 그런 종교로 전락시키는
매우 위험하고 불순한
잘못된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신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사람과 똑같은
고통과 고민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죽음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 신앙의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신 것처럼
이웃을 긍휼하게 여길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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