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일 화요 아침묵상-가룟 유다의 배신

 

마가복음 14:43-46 (개역개정, NIV)

43 그런데 곧,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

44 그런데, 예수를 넘겨 줄 자가 그들에게 신호를 짜주기를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하고 말해 놓았다.

45 유다가 와서, 예수께로 곧 다가가서 "랍비님!" 하고 말하고서, 입을 맞추었다.

46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손을 대어 잡았다.

43 Just as he was speaking, Judas, one of the Twelve, appeared. With him was a crowd armed with swords and clubs, sent from the chief priests,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elders.

44 Now the betrayer had arranged a signal with them: "The one I kiss is the man; arrest him and lead him away under guard."

45 Going at once to Jesus, Judas said, "Rabbi!" and kissed him.

46 The men seized Jesus and arrested him.

 

 

오늘 아침묵상은

종교권력자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도대체 왜

많지도 않은 돈 은 삼십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겼을까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대가로 받은 은 삼십은 당시 가치로는

120 데나리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품삯이었다고 하니

120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네 달치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120 데나리온이

많다고 하면 많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큰돈이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부었을 때

여인이 부은 향유의 가격이

무려 삼백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따라서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넘기는 대가로 받은

은 삼십은 그리 큰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단순히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복음서 전체나 당시 역사를 통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보다 복잡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젤롯당(Zealot 열심당) 출신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젤롯당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 통치에

무력항쟁으로 맞설 것을 주장하였던

종교적이며 민족주의적 정치 운동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가는 곳마다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많은 군중들을 모았던 예수님이라면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충분히 해방시켜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희망하고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기와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가룟 유다의 입장에서는

뜬 구름과 같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길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개를 외치는 예수님,

 

경제적 구원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을 외치는 예수님,

 

심지어 타락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무너뜨리고 물리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고난당하고 죽임당할 것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스승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과

자신이 기대하고 꿈꾸는 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만일 가룟 유다가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일에

앞장서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는 지나치게 똑똑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민족의식에 투철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이

자신이 이루려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가룟 유다는

아마도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졌을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에 사로잡힌 가룟 유다는

자신의 무너진 꿈으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절망과 좌절로 인한 그의 분노는

이전까지 자신의 희망이었었던

스승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였던

가룟 유다의 행동은

그의 깊은 절망과 좌절이 만들어 낸

뜻밖의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가룟 유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만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이 무너졌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절망하고 좌절하면 분노하게 되고,

분노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이성이 마비되면 감정에 의한

충동적인 결정이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실수나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충동적인 선택과 행동에 의해 비롯된 것이

거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죽음을 앞에 두고

절망하고 고민하고 슬퍼하며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할 때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자신의 감정을 굴복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믿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 확신과 신념에 빠져서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

깊은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우게 되면

실수나 죄를 범하기가

너무나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에서 상처를 주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적절히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라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신앙은

기복이 심하며 편견과 아집이 강합니다.

 

감정에 의존하거나

감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신앙에서

이성을 일깨우는 신앙으로,

감정을 넘어서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건강한 신앙의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절망의 감정에 휘둘리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굳게 붙잡는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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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