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목요일 아침묵상-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2
마가복음 14:47-52 (개역개정, NIV)
47 그런데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라 버렸다.
48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성전에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50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51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니,
52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47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48 "Am I leading a rebellion," said Jesus, "that you have come out with swords and clubs to capture me?
49 Every day I was with you, teaching in the temple courts, and you did not arrest me. But the Scriptures must be fulfilled."
50 Then everyone deserted him and fled.
51 A young man, wearing nothing but a linen garment, was following Jesus. When they seized him,
52 he fled naked, leaving his garment behind.
폭력배를 이용해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율법학자들의 행동은
결코 당당하거나 떳떳하지도 않은
악하고 심지어 불법적인 행동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잡아들이는 일이
당당하고 떳떳한 일이며 합법적이었다면
굳이 한밤중에 폭력배들을 이용해서는
예수님을 붙잡아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권력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싫어하고 미워했지만
아무런 죄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함부로 예수님을 붙잡아갈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한 밤중에
칼과 몽둥이를 든 폭력배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잡아가려는 행위 자체는
매우 비겁하고 불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폭력배를 보내어
자신을 붙잡으려고 하는 종교권력자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책망하시면서도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4:49
내가 날마다 성전에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담겨진 의미는
비록 너희가 나를 붙잡아 가지만
이것이 너희들의 비겁하고 사악한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
저들의 비겁하고 사악한
권력의 힘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고발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51절과 52절의
도무지 생뚱맞아 보이는 사건도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51-52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니,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께서 폭력배들에게 붙잡혀가는 사건과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을
굳이 기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의견과 주장이 있습니다.
또한 맨몸에 이불 하나만 걸치고
예수님을 따라가다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했던 젊은이가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것처럼
이 청년 역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심지어 청년은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맨몸으로 벌거벗고 도망쳤다는 것은
구약성경 아모스서 2:16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모스 2:16
용사 가운데서 가장 용감한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갈 것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가장 용감한 용사라고 할지라도
벌거벗고 도망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마도 마가복음의 저자는
아모스서의 말씀과 연관하여
결국 예수님께서 잡혀가신 것도
성경말씀을 이루려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라 보여 집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사역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의 욕심을 이루고자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
수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신 것도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섭리를
따르려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의 몸이기에
내적인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라는 고난과 죽음의 길을
피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구별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하나님의 뜻이기에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나 운명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가는 것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고 절실하게 기도하셨습니까?
그것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뇌와 고통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순종의 사건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순종을 배우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수동적인 숙명과 운명의 삶을 넘어
능동적인 순종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반드시 치열하고 절실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절실하고 치열한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오늘의 기도】
숙명이나 운명에 의해
좌우되고 끌려 다니는 인생이 아니라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존귀한 성도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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