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일 금 아침묵상-대신 지신 십자가

 

이사야 53:5-6 (개역개정, NIV)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We all, like sheep, have gone astray,

each of us has turned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사순절의 모든 여정을 마감하는

서른아홉째 날이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성 금요일입니다.

 

오늘 아침묵상은

마가복음에서 잠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메시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음성묵상도 없습니다.

 

브라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이 들어

아내와 딸만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였고

남겨진 딸의 이름은 크리스티나였습니다.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늦게까지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중에도 엄마의 걱정은

늘 딸 크리스티나에게 있었습니다.

 

혹시 딸이 잘못된 길을 걷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딸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딸은 커가면서 삐뚤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들어왔더니

딸이 친구들과 함께

화려해 보이고 풍요로워 보이는 도시로

가출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가출한 딸이

갈 만한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나이트클럽, 술집, 도박장 등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딸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엄마는 딸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딸을 찾으려고 만든

전단지가 매우 특별했습니다.

 

엄마는 집 나간 딸의 사진으로

전단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신의 자신의 사진을 확대하여

전단지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딸이 갔을 만한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수천 장의 전단지를

화장실에도 붙이고

전화박스에도 붙이고

온갖 나쁘게 된 사람들이

갈 만한 곳에다가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단지 앞에도 아니고

뒤에다 메모를 남겨두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했던지

지금 네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나는 상관하지 않으니 돌아오렴!"

 

아주 짧은 메모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장의 전단지를 붙였어도

집을 나간 딸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가져간 모든 돈을 쓰고도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엄마는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 도시로 올 때

딸 크리스티나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여태껏 누리지 못한 풍요함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출한 십대가

할 수 있는 일을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술집을 전전하게 되었고

마침내 마약에까지 손을 대었습니다.

 

예쁘던 얼굴이

마약과 술로 인해 망가져 갔습니다.

 

마침내 술집에서도 쫓겨나

당장 먹고 살 곳도 없어졌습니다.

 

일하던 술집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방황하던 중

벽에 붙여진 수많은 전단지 가운데

익숙한 얼굴을 보았습니다.

 

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확대되어 인쇄된 전단지였습니다.

 

수치스러운 마음과 분노한 마음에

전단지를 떼어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껏 보이지 않던

엄마의 얼굴이 인쇄된 전단지가

여기 저기 붙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전단지를 떼어 찢어 버리려다

뒷면에 있는 엄마의 메모를 보았습니다.

 

"네가 무엇을 했던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던지

나는 상관하지 않으니 돌아오렴!"

 

딸은 수치심에 부끄러워서

옆에 누가 있나 없나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부끄러워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자기의 이름도 얼굴도

인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만 아는

엄마의 얼굴만 있는 것입니다.

 

순간 자기를 찾는 전단지에

자신의 얼굴을 붙이지 않고

엄마의 얼굴 사진을 인쇄한

엄마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있는 전단지가

절망에 빠진 딸의 마음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결국 자신을 애타게 찾는

엄마에게로 돌아갈 용기를 얻고

엄마를 찾아 시골로 돌아갔습니다.

마침내 엄마는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전단지로

가출한 딸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의 허물을 덮기 위해서

자신의 얼굴을 확대하고 인쇄를 해서

온갖 우범지역에 붙였던 엄마처럼

스스로 십자가의 수치와 모욕을

선택하셨습니다.

 

딸이 당할 모든 죄인 취급을

그 어머니가 받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죄인 취급을 받으므로

죄인 된 우리의 허물을 덮어버리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지난 사십일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사순절과 고난주간으로 보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그 사람과 함께 아파해 주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당해 슬퍼하는 사람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사람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성 금요일의 기도 이해인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 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베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죽음의 쓴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깨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