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수요일 아침묵상–그들의 믿음2
마가복음 2:1-5 (개역개정)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 A few days later,
when Jesus again entered Capernaum,
the people heard that he had come home.
2 So many gathered that there was no room left,
not even outside the door,
and he preached the word to them.
3 Some men came, bringing to him a paralytic,
carried by four of them.
4 Since they could not get him to Jesus
because of the crowd, they made an opening
in the roof above Jesus and,
after digging through it, lowered the mat
the paralyzed man was lying on.
5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오늘 아침묵상은 2016년 7월 12일
“그들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드린
묵상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중풍병에 걸려 평생을
침대에 누워서 살아야 했던 사람을
네 사람(친구)이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어
중병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뜯어 중병병자가 누운 침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붕을 뜯으면서까지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네 사람의 믿음과 수고를 보시고는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네 사람의 행동에 나타난
믿음과 수고에 초점을 두고
이 사건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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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등장하는 중풍병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병에서 나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온
네 사람의 수고와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오기 위해선
중동의 뜨거운 날씨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상당한 거리를 들어서 날라야 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수고이며 희생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지붕으로 올리고
지붕을 뚫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오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까지
수고와 희생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정확한 사정이 나오지 않기에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네 사람은
중풍병자의 부모나 친척에게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지붕까지 올라가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리는 일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이 돈 때문에
이 모든 수고와 노력과 희생을 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 때문에
병자를 치유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추측컨대 이 네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리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유함을 얻은 것은
중풍병자에 대한 네 사람의
긍휼한 마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건일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특별히 약자에 대한
관심과 긍휼과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
어려운 사람이 보이면
긍휼한 마음이 들어야 하고,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마음 아파해야 하고,
남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고백하면
같이 울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냉정해 지는 것,
사람에 대해 무관심해 지는 것,
사람에 대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이런 것은 모두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가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들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있는데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네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중풍병자를
반드시 예수님 앞에
데려 오려고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중풍병자를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
이들로 하여금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네 사람은 자신들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중풍병자를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은 중풍병자에 대한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과 희생이
환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이 찾아가려는 예수님만이
환자를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이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무지 안 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에 대한 네 사람의 태도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영적으로 돕거나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할 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수고와 헌신과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내 정성과 노력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위해
온갖 수고를 하고 노력하고 희생했음에도
그 사람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붕을 뚫어서라도
중풍병자를 예수님 만나게 한 것처럼
내 수고와 노력과 희생은
오직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이 네 사람이
어떤 수고와 고생을 한다고 해도,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푼다고 해도
중풍병자의 병(문제)을 낫게(해결)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중풍병자의 병(문제))은
예수님만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이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사람의 한계인 것처럼
또한 우리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긍휼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수고와 열심을 다해 돕는 것은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수고와 노력이 그를 변화시키고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화시키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린 그저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의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믿음은
무엇이든지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훨씬 더 성숙한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6-8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사도바울의 권면은
심고 물을 주는 수고와 노력과 헌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니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수고와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거기에 합당한 상급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토록 수고하고 노력했음에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변화와 결과가 없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할 것도 없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변화와 결과가 있다고 해서
이것이 모두 내 수고와 노력의 결과라고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영성을 가지게 하시고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