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목요일 아침묵상–예수님의 솔루션(solution)
마가복음 2:6-12 (개역개정)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오늘은 2016년 7월 18일
예수님의 솔루션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드린
아침묵상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중풍 병에 걸려
평생을 침대에 누워서 살아야 하는
중풍병자를 긍휼히 여긴 네 사람(친구)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네 사람의 믿음을 기쁘게 보시고는
중풍병자를 향해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선포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중풍병자는 물론이고,
병자를 침상에 메고 온 네 사람들도
자신이 데려온 환자의 병이 낫기를 원하여
예수님 앞에 환자를 데려 온 것이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를 받았다고 선언하신 말씀 때문에
순식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이 그 죄를 용서받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 권한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네 죄가 용서 받았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하나님께 속한 권한을 함부로 남용하는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율법학자)들에게 책잡히실 줄 아시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책잡히실 줄 아시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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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학자(서기관)들은
중풍병자의 병은 고치지 않고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포하는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율법학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마가복음 2:9 (개역개정)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과연 어떤 것이 더 쉬울까요?
예수님의 질문은
상당히 복잡한 질문입니다.
당시 종교적 상황에 따른다면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말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죄를 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으로
오직 제사장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는 행위는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도 아니었고,
또한 예수님만 하셨던
특별한 이적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제사장)들이나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들도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기 쉬운 것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들리는 말로만 따진다면,
“죄 사함을 받았다.”
말하는 것이 더 쉬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병을 고치는 것은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했는데
중풍병자가 일어나지 못하면
망신당할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 말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당장 일어나 걸어가라 말하는 것보다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해도
애매모호한 질문을 통해
율법학자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들의 속마음이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함부로 남용했다는
예수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라는 작자가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
위기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예수님에 대한 비웃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드러내시고는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에
중병풍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들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곧 바로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지 않으셨을까요?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율법학자들의 분노와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불치의 병이나 재앙이 생기면,
그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이
남모르게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불치의 병이나 재앙을 겪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죄인이라 여기며 정죄하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장님으로 태어난 게
누구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요한복음 9::2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물었다.
제자들은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나 그 부모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제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잘못된 종교적 믿음을
주장하고 퍼트리고 가르쳤던
대표적인 사람들은
자칭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병이나 재앙 등 나쁜 일들은 모두
죄와 연결 지어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였기에
가난하거나 병이 걸리거나
불행한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기가 겪는 모든 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감당하기 힘든 재앙이나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긍휼의 마음을 갖기보다는
죄가 많은 사람이요,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쳤던
태어나면서 소경이 된 것과 죄와의 연결점을
단호하게 끊어버렸습니다.
나면서 소경된 자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예비하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이나 재앙을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아
생겨난 것이라 믿는 것은
잘못된 종교적 해석이며 믿음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병에서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율법학자들이
중풍병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중풍병자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저주 받은(정죄 받은) 죄인이라는
영적굴레부터 영적 자유를 얻는 것이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고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죄라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불행한 병이나 재앙을 겪는 것을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종교적 해석이며 믿음이라는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와 교인들은 이런 잘못된 생각과 믿음에서
조금도 나아지거나 자유롭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교인들에게 불행한 일 또는 재앙이 닥치면
모든 것을 그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나 정죄로 생각하는 경향이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저주나 불치의 병과 같은 것으로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회개와 용서를 통해 해결하시는 분이심을
예수님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믿음을 통해
잘못된 편견과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