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7일 월 아침묵상의인과 죄인

 

마가복음 2:15-17 (개역개정)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은 2016726

의인과 죄인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드린

아침묵상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해석하고 가르친

율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였으며

자신들은 스스로 의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함부로 죄인들이라며 정죄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신앙을

외식하는 가짜 신앙이라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과

자주 충돌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구분하였던

의인과 죄인의 기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설명하셨는지에

초점을 두고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 아침묵상은

교단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타주로 출타하기에 쉽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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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리새파 출신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증오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음모와 계략에 의한 것입니다.

 

그럼 그들은 왜 예수님을

싫어하다 못해 미워하고 증오했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사회의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자신들의 가르침과

사사건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이 가진

거짓과 불의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싫어하니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들도 싫어했습니다.

 

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 트집을 잡아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리 레위(마태)를 제자로 삼으시고는

심지어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소리 높여 책망하고 비난합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왜 문제가 되고

비난거리가 되었을까요?

 

당시 유대 문화에서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출신의 서기관(율법학자)들은

세리와 죄인들은 결코 가까이 하거나

함께 어울려서는 안 되는

부정한 사람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생각한

거룩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은

부정한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스스로 신실하다고 착각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생각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경건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는 절대로 어울려서는 안 된고

오직 믿음의 사람들하고만

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식의 신앙생활이

우리를 경건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신앙생활일까요?

 

아니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신앙을

분리주의 또는 차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분리주의 또는 차별주의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악한 사람으로,

심지어 죄인으로 정죄하여 차별하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과 분리시키고, 차별하여

자기를 의로운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그리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신앙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비하하여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거룩과 경건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경건해지고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또는 훨씬

낫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들을 일렬로 등수를 매겨서

몇 등까지는 구원하시고

나머지는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유일무이한 사건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고

함부로 정죄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결코 내 기준과 판단에 따르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그 말을 듣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바리새파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의인에게 있지 않고

죄인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경은 선포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무슨 뜻입니까?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외모를 보고,

모양을 중요하게 여기고

결과로만 판단하는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실제보다 더 잘 보이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보시고,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중심으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의인이라는 칭찬의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들 역시 병든 자이고 죄인인데

너희들은 도대체 왜

스스로 의인인 줄 착각하느냐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도 임할 수 없다는

강력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 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절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자기 의로 충만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비집고 들어 갈

빈틈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겉모습만 보는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우리의 중심(마음)을 보시는 하나님마저

속일 수 있다는 교만을 깨닫게 하시어

신실한 믿음의 사람인 척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간절히 사모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