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월요일 아침묵상–내용과 형식
마가복음 2:21-22 (표준새번역)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내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21 "No one sew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If he does, the new piece will pull away from the old, making the tear worse.
22 And no one pours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he does, the wine will burst the skins, and both the wine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No, he pours new wine into new wineskins."
오늘 아침묵상은 2016년 7월 28일
내용과 형식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드린
묵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형식은 반드시
좋은 내용을 담아야 하고
내용은 반드시
좋은 형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형식과 내용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형식을 통해 전해져야 할
내용이 왜곡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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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을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따진 것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꼬투리 잡아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의 비난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왔고,
그러니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에 체면이 구긴
바리새인 율법학자는
이제는 아예 ‘먹고, 마시는’ 일
그 자체를 가지고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제자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는 않고
먹고 마시는 일만 찾아다닌다며 비난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 하지 않고
오로지 먹고 마시는 일만 즐긴다고 비난하는
바리새파 율법학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는
낡은 옷을 꿰매는데 새 옷 조각으로
꿰매지 않는다는 비유의 말씀이며
다른 하나는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담지 않고
새 가죽 부대에 넣는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두 비유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전하고자 하시는 내용(메시지)은
똑같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내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무슨 뜻입니까?
헤어진 낡은 옷을 수선할 때는
새 옷에서 옷감을 잘라서 낡은 옷을 수선하면
새 옷도 망가질뿐더러
낡은 옷에 붙은 새 옷 조각이
낡은 옷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고친 옷은
빨래라도 하게 되면
새 옷 조각이 심하게 줄어들어
애써 꿰맨 낡은 옷마저 찢어 버립니다.
따라서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며(여자라면)
낡은 옷은 낡은 옷 조각으로 궤 매고
새 옷은 새 옷 조각으로 꿰맨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2:22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포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포도주를 만들고는
이것을 오랫동안 사용하였던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새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생겨난
강하고 독한 가스가 낡은 가죽 부대를 팽창시켜
그 부대를 터지게 만듭니다.
결국 새로 만든 포도주도
지금껏 잘 사용하던 낡은 가죽 부대도
다 못쓰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 만든 포도주는
새로 만든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비유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의 규정에는
그 규정을 지키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율법의 규정을 지키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기록된 규정 자체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새 옷이나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가르침 즉 복음을 의미합니다.
낡은 옷과 새 옷을
붙일 수 없는 것처럼,
새 포도주에는
새로운 가죽부대가 필요한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라는
낡은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내용을 위해서는 형식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도
적당한 그릇에 담겨지지 않으면
먹을 수 없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음식에 맞는 그릇에
담아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의해야 할 것은
음식을 아무런 그릇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적절한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물론 국을 넓은 접시에 담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국은 넓고 움푹한
국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또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릇이 아무리 비싸고 좋아 보여도
입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비싼 그릇은
거기에 담겨진 음식보다
수십 배, 또는 수백 배
더 비싼 그릇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릇이
음식보다 비싸다고 해도
그릇을 음식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은
비싼 그릇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겨진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지키기 위해선
그릇과 같은 적절한 종교예식이나 행위라는
형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종교예식이나 행위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라면
아무런 소용도 의미도 없습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은
형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아야 할 내용이 있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려(없애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시길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예수님께서는
수시로 율법이 정한 규정들을 어기셨습니다.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정결법을 어기셨고,
금식해야 하는 날 금식하지 않았고,
안식일의 여러 규정들도 어기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하시고자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하시려고 했던 것은
율법이라는 문자로 기록된 규정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정결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건강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고,
금식과 기도를 통해
욕심을 컨트롤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고,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과 과부와 고아들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며 살기를 원하셨고,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통해
돈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고,
각종 제사와 절기를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하시고자 했던 것은
율법의 형식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입니다.
형식은 그릇과 같아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와 상황과 문화가 달라졌는데
유대인들의 제사법이나 정결법이나 안식일 법을
옛날 그대로 지키자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을
시대에 맞는 방식과 형식을 통해 지켜내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셨던 바른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종교 형식과 교리에 집착하기 보다는
형식과 교리에 담아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게 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적절한 형식에
담아낼 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