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목요일 아침묵상–안식일에 해야 할 일
마가복음 3:1-6 (표준새번역)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모의를 하였다.
1 Another time he went into the synagogue, and a man with a shriveled hand was there.
2 Some of them were looking for a reason to accuse Jesus, so they watched him closely to see if he would heal him on the Sabbath.
3 Jesus said to the man with the shriveled hand, "Stand up in front of everyone."
4 Then Jesus asked them, "Which is lawful on the Sabbath: to do good or to do evil, to save life or to kill?" But they remained silent.
5 He looked around at them in anger and, deeply distressed at their stubborn hearts, said to the man, "Stretch out your hand." He stretched it out, and his hand was completely restored.
6 Then the Pharisees went out and began to plot with the Herodians how they might kill Jesus.
오늘 아침묵상은 2016년 8월 17일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드린
묵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질서이며 무례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면서까지
종교적 규정이나 형식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형식이나 관습
또는 전통을 무시하자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무너지면
교회는 거룩함이나 경건함이 없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맙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얽매여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한다면
결국 교회는 죽은 신앙이 되고 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할 수 없는 것만 많아지는 사람은
신앙이 주는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갈수록 힘들고 버겁습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것이 더욱 많아지는 사람은
신앙을 통해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갈수록 기쁘고 감사합니다.
율법의 규정에 얽매이면
살면서 할 수 없는 것만 많아집니다.
그러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집중하면
율법 안에서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좋은 신앙이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하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할 수 없는 일만 많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믿음은
깊어지면 질수록 누리는 자유가 더 커지게 됩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는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일이 더 많아졌는지
생각해 보며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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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마침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에는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기를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손이든 손이 오그라든 것은
먹고 사는 일에 큰 장애가 되겠지만
유대문화에서 오른 손이 마비가 되었다는 것은
그 장애의(고통의) 정도가(크기가)
왼손 보다는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몇 몇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는 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아서
바리새인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로 손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에 데려다 놓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면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은 죄로
예수를 고발하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의 행동을 예의주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해석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당장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아무리 병자라고 해도
병을 고쳐서는 안됐습니다.
위급하지 않은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은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의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큰 상처를 입어
당장 꺼내어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사람을 구출하여 치료하는 것은
안식일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덩이에 빠졌지만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에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이 됩니다.
사람을 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음 날 구해야 하는 지에 대한 판단은
랍비라고 불렸던
율법학자들에게 달려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생각에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병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장 생명에 위협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안식일에는
그 사람의 병을 고치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고는
그 사람의 병을 고쳐준다면
안식일 규정(교리)을 어긴 것이라 여기고
이것을 꼬투리 잡아서
예수를 비방하고 고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용서하심보다
형식과 교리 그리고 종교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민낯(맨 얼굴)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 죄인들은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에 위험이 되는
행동과 가르침을 일삼는 예수님을
고발하는 도구(수단)로만 여긴 것입니다.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죄인들과 같은
사회 종교적 약자들을 긍휼히 여겨야 할 교회가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과 이익을 위해
사회 종교적 약자들을 비난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잘못된 세상 권세에 저항해야 할 교회가
잘못된 세상 권세를 위해 아부하고
그들의 부패한 권력을 지켜주는 일에 앞장섭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손 오그라든 사람을 불쌍히 여겨
병을 고쳐 주신 예수를 고발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날
회당에서 손 오그라든 사람을 만난 것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려는 계략인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이용해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그들 앞에 세우고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무척이나 날카로웠습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라고 물으셨다면
아마도 저들의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들은 대답하기를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은
당장 목숨이 달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안식일의 규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상했던 방식으로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안식일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는 질문 이전에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안식일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라는
질문을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어느 누구도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안식일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물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목숨을 구하는(병자를 치료하는) 일이고
안식일에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병자를 외면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
하지 말아야 하는 안식일 규정(교리)에
포커스(focus)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반드시 해야 하는 안식일의 정신(본질)에
포커스를 두고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칠 수 있거나 도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의 교리(규정)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돕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안식일에 악한 일을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악한 일, 사람을 죽이는 일이란
남의 것을 도둑질 하고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남에게 해코지 하고 살인을 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한마디로 말해
직접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고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악한 일, 혹은 죽이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생각하신
악한 일, 사람을 죽이는 일이란
직접적으로 남을 해코지 하거나
몸을 상하게 하거나 혹은 죽이는 것만을
악한 일, 죽이는 일이라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도움도 베풀지 않는 모든 것이 악한 일이며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 여기신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방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이며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4-45
그 때에 그들도 대답하여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그 때에 임금은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의 초점이
하지 말아야 할 일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초점을 두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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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