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금요일 아침묵상-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차이
마가복음 3:1-6 (개역개정)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 하니라.
오늘 아침묵상은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 8월 22일에 보내드린 묵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존경을 받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여러 가지 문제로 자주 충돌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충돌하였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기에 이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무엇 때문에
당시 대부분의 유대 사람들이
신실하다고 여기고 존경하던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였는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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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손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에 데려다 놓고는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떻게 하나
지켜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손 오그라든 사람을 보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셔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병을 고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꼬투리 삼아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기득권)에 훼방을 놓는
예수님을 옭아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이런 계략을
이미 아신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을 사람들 앞에 세우고는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의 숨겨진 뜻이 무엇입니까?
선을 행하는 것은
아픈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그것이 곧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악을 행하는 것은
아픈 사람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이는 것이라 여기셨습니다.
비록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불쌍히 여겨
병을 치료하는 것은 선한 일이며
나아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여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상황을
당장 목숨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결정적 차이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을 살리고 목숨을 구한다는 것은
단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막거나 돕는
최소한의 인명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을 살리고 목숨을 구한다는 것은
단지 최소한의 인명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을 살리고 목숨을 구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생명을 살리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목숨을 구하는 것과 연관 시키셨으며
안식일에 악한 일을 하는 것을
사람을 죽이는 것과 연관을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히브리 노예들에게
안식을 주시고 지키게 하신 것은
단지 그들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사람답게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이스라엘 백성들)
400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살면서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그들이 일한 대가는 겨우 먹고 살 양식이 전부였으며
억압과 박해 속에서 때로는 매를 맞아가며
뼈가 부스러기까지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목숨은 붙어있어 숨을 쉬며 산다고는 하지만
결코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노예로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사람다운 삶은 단 한 번도 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살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히브리 노예들을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일만하는 노예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시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과 규칙에 얽매이기보다는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초점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2:27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럼 사람을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단지 목숨을 구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도록 돕는 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을 살려야 하는 안식일의 정신을 지키기보다
안식일에 대한 교리(규정)를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고는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 하니라.
사람을 살려야 하는 안식일에
바리새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일까?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의논합니다.
이것은 단지
바리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보다
사람이 만들고 정한 교리와 제도 기득권을
더 중요하게 여긴 교회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사건입니다.
이른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주일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돕고 살리기 보다는
함부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멀리하였던 적이
더 많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주일)을 지킨다는 신앙 때문에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사람을 위해 선한 일을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나쁜 의도가 있음을 아셨음에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바리새인들의 고발을 당하는 것보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고통을
더 안타깝고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이용해
예수를 고발하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안타까운 처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이 사람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넘어뜨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통 또는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종교적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매우 악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이런 자들을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탄식하시고 분노하십니다.
마가복음 3: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면서,
바리새인들과 같은 잘못을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교회가
사람을 이용하는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모아야 한다고 합니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을 위해선
더 많은 헌금이 있어야 한다고 교인들을 닦달합니다.
심지어 선교비를 모은다는 명분을 앞세워
바자회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교회에서 장사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비둘기 팔고, 돈 바꾸어 준다며 장사하다
예수님께 쫓겨난 일과 뭐가 다릅니까!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선
더 큰 건물이 필요하다며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는 더 큰 건물을 짓습니다.
심지어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속이며
더 크고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지을수록
하나님께 더 크게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가증스러운 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이라는 거룩한 명분을 앞세워
교인들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발 바라기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불필요한 일에 교인들을 이용하려는 선동에
절대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속이는 목사도 잘못이지만
생각 없이 자꾸만 속는 교인도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바리새인들과 같은 교리적이고 굳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욱 깨어 기도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