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금요일 아침묵상-알지 못함의 신비
마가복음 4:26-29 (개역개정 NIV)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는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것은
모든 일이 내 힘과 능력에 달렸다는
교만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물론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결과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은
기독교인의 바른 자세나 태도는 아닙니다.
세상은 늘 드러난 결과로만
사람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결과만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과로만 판단하는 세상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동기와 과정입니다.
결과야 어떠하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결코 씨를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다만 씨를 뿌릴 뿐입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줄뿐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지만
뿌린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에 초점을 두고 묵상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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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라는 씨가 사람들에게 전파되면
이것이 어떻게 자라나느냐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에 뿌려진 씨가 어떻게 자랐습니까?
예수님은 이것에 대해 말씀하시길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었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저절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4:28 (표준새번역)
땅은 열매를 저절로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의 알찬 낟알을 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고 하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숨겨진(보이진 않는) 힘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다고 하지 않고
땅이 스스로(저절로) 열매를 맺게 했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농부의 수고와 노력을 생략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
하나의 씨앗이 죽어서(변화되어)
30배, 60배, 100배의 수많은 열매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신비(mystery)는 잘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당연한 존재를 생략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분명함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의도도,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감추어진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가 스스로(저절로) 자라난다는 표현을 통해
탐욕스러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커지는 것은
이기적인 사람들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씨앗이 싹을 맺고,
이삭을 맺고,
마침내 낟알을 맺는 것과 같이
모든 자연의 이치와 순리는
그 자체로서 신비로운 일입니다.
농부로서는
아무리 애써도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내 자식이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씨앗이 자라는 것 역시
농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가 뿌린 씨앗은 잘 자랍니다.
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잘 자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사실이 주는 영적도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탐욕스런 세상과 욕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를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우리를 통해서, 우리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일과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게 될지,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자라날 것입니다.
마가복음 4:27b (표준새번역)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 세상에 대해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하심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하심(다스리심)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설명하거나 이해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수많은 모순덩어리로 가득 찬 세상과
각자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인생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리고 그 분의 뜻을
함부로 안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아무리 연구를 하고
성경을 달달 외운다고 해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각자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농부가 모르지만
씨앗이 잘 자라 알찬 낟알을 여무는 것처럼,
비록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씨앗이 자라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낟알을 맺은 것으로 씨앗이 자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자라는 모습은 알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열매를 맺은 것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든 것을 다 알아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알아야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대해
시시콜콜한 모든 것까지 알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속한 (인간의) 구원까지도
자신이 아는 성경구절 몇 구절을 아는 것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삼으려고 합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구원의 확신과 같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아무리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자기 확신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이천 년 교회(카톨릭, 개신교)의 역사를 보면
교회와 종교지도자들과 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세우고는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십자가를 앞세우고는
수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특별히 여자(마녀사냥)와 이교도들,
교회의 가르침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수 없이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십자가를 앞세운
교회에 의해 벌어졌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들만이 하나님에 대해 잘 안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만 하나님의 진리를 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절대적이다.
우리는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예비하신 불지옥에 떨어진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에 대해 안다는
교회와 종교지도들의 자기 확신이라는 독선과 교만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땅에 씨를 뿌리고
여름내 씨가 자라는 것을 도운 농부도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중에
다음과 같은 찬송가 가사가 있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찬송가의 가사처럼,
정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앙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에 대해 제일 잘 안다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신앙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앙은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조차도 다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다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진리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우리가 감히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이
우리를 겸손한 신앙인이 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자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도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인내를 요구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명확하지 않으며 분명하지 않으며
희미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씨가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씨가 자랐다는 것을 농부가 어떻게 압니까?
낟알을 맺는 것을 통해
씨가 자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씨가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씨가 자란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선
씨가 낟알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는 믿음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자라는 것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성장,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