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일 수요일 아침묵상-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인

 

 

마가복음 5:24-29 (표준새번역 NIV)

24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었다.

25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26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27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어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 했던 것이다.)

29 그런 다음에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24 So Jesus went with him. A large crowd followed and pressed around him.

25 And a woman was there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26 She had suffered a great deal under the care of

many doctors and had spent all she had, yet

instead of getting better she grew worse.

27 When she heard about Jesus, she came up

behind him in the crowd and touched his cloak,

28 because she thought, "If I just touch his clothes,

I will be healed."

29 Immediately her bleeding stopped and she felt

in her body that she was freed from her suffering.

 

 

자신의 집단을 지키기 위한

세상의 방식, 유대 종교의 방식은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쫓아내거나, 배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거룩함으로 부정한 여인을

깨끗케 하심으로

공동체를 지키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복음의 방식입니다.

 

죄인을 쫓아내거나 배척하므로

교회의 거룩함으로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깨끗케 함으로

교회의 거룩함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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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간청하기를

자신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정을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님과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갑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다 보니

예수님을 밀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5:24 (표준새번역)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치며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무도 몰래 예수님의 옷을 만진 것입니다.

 

혈루증은 여자가 하혈을 하는 병으로

레위기 정결법에 의하면

부정한 병으로 여겼던 질병이었습니다.

 

레위기 15:25 (표준새번역)

어떤 여자가 자기 몸이 불결한 기간이 아닌데도,

여러 날 동안 줄곧 피를 흘리거나,

불결한 기간이 끝났는데도, 줄곧 피를 흘리면,

피가 흐르는 그 기간 동안 그 여자는 부정하다.

몸이 불결한 때와 같이,

이 기간에도 그 여자는 부정하다.

 

이것을 생리를 하거나 하혈을 하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로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율법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이

피를 흘리는 여인을 부정하다고 한 것은

피를 통해 병이 전염된다고 여겼기에

일반 백성들이 실수나 고의로 피를 만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에서 지내며 공동생활을 했던 시대적 상황과

당시 의료 기술이 미약했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적인 교단이나 목사들이

문자적인 기록에 얽매여

여성이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여성은 목사나 장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식의 성경 해석과 적용은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종교를 앞세운 영적 폭력입니다.

 

이런 식의 성경 해석이나 생각을

다양성이라는 이유로 인정해 주면 안 됩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해석의 다양성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성경의 왜곡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적용하여

혈루증 걸린 여성을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여인만 부정하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이 만진 모든 것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과

접촉한 사람과 만진 물건뿐만 아니라

심지어 앉은 장소마저 부정하다 여겼습니다.

 

결국 혈루증에서 낫지 않은 여인은

가족과 마을에서 쫓겨나 혼자 살아야만 했습니다.

 

마가복음은 기록하기를

이 여인이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5:25 (표준새번역)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유대의 종교 문화에서

12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파가 12지파였으며

예수님의 제자 역사 12제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12라는 숫자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하신 사건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여겨집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열두 살 이었다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5:42 (표준새번역)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마가복음 5:26 (표준새번역)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의사들의 갖가지 처방에 따라

온갖 시도를 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였고

가진 재산도 모두 사용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은 더욱 심각해 졌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질병보다

이 여인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이 있습니다.

 

앞서도 설명을 했지만

혈루증은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병입니다.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사람이 만진 물건도 부정해 지고

부정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부정해 지고

심지어 부정한 사람이 앉아 있던 곳도

부정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스스로 가족에게서 떠나야 했으며

사람들에게는 부정한 여인이라 조롱과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죄인이라는 낙인과 함께

그가 살던 마을로부터 쫓겨났습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가진 전 재산을 다 쓰며 병을 고치려 했지만

병은 갈수록 더욱 심해 졌습니다.

그렇게 12년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절박한 형편인지를

도무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12년을 고통과 좌절 가운데 살며

이젠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여기던 그 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12년 동안 고통당하던 여인에게는

예수님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자신이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예수님에게 다가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여인은 자신이 병이 깨끗해졌음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여인이 접촉하고 만졌던 모든 것들이

부정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공동체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지만

예수님이 부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만진 여인이 정결해집니다.

깨끗해집니다. 거룩해집니다.

 

율법이 정한 여인의 부정함이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거룩하심이

부정하다는 여인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만의 방법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의

정결함, 건강함, 깨끗함을 지키기 위해

부정하다고 하는 여인을

멀리하고 쫓아내는 것으로

자신들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세상의 방식입니다.

 

세상이 자신들을 지키는 방법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은

 

분리하거나, 멀리하거나,

무시하거나, 쫓아내는 것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정죄한 부정한 여인을

세상의 방식, 율법의 방식으로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율법이 금지한 부정한 여인과의 접촉을

말리지도, 피하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여인이 다가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옷자락을 만지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아닙니다.

 

부정한 여인이 몰래 다가와

옷자락을 만지려 하는 것을 이미 아셨음에도

만지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여인의 부정함이

결코 예수님을 부정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정한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거룩함으로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옷자락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가복음 2:17 (개역개정)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의인이 아닌 죄인들을 위해 오셨기에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자신의 이익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내쫓거나, 멀리하거나, 따돌리는 방식이 아닌

신앙과 교회의 거룩함으로 세상의 부정함을

깨끗케 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