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일 수요일 아침묵상-절망적인 현실

 

마가복음 5:37-40 (표준새번역 NIV)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밖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셨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뒤에,

아이의 부모와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37 He did not let anyone follow him except Peter,

James and John the brother of James.

38 When they came to the home of the synagogue

ruler, Jesus saw a commotion, with people crying and wailing loudly.

39 He went in and said to them, "Why all this

commotion and wailing? The child is not dead but

asleep."

40 But they laughed at him. After he put them all

out, he took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and the

disciples who were with him, and went in where

the child was.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고 형통할 때

믿음이란 하나님 믿는 흉내만으로도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 좋다고 자부하거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진짜 믿음은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을 때

사방으로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의 진짜 믿음은 드러나게 되며

이때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끝내 죽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의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걸음을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실 필요가 없다는

회당장 야이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님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

진짜 믿음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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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을 보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딸의 죽음을 전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모셔 오실 필요가 없다고

회당장을 말립니다.

 

무슨 뜻입니까?

딸이 죽었으니 이젠 예수님이 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음으로 두려워하는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따라오던 많은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오직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우리 장례 문화에도

전문적으로 곡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유대 장례 문화에도

전문적으로 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고용되어

(우는 시늉을)하며 떠들고 있었던 같습니다.

 

예수님이 도착하기도 전에

야이로의 집에서 곡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비록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회피하지 않으십니다.

 

곡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며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5:39 (표준새번역)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셨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음을 확인하고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곡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며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금도 좌절하지 않으십니다.

 

아이가 자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곡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곡하는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비웃었습니까?

 

예수라는 사람이

자신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곡을 하는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가 신비한 능력이 있어

야이로가 자신의 딸을 살리려고 모셔온 사람이지만

이미 죽어버린 딸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고 여기고

예수를 비웃고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곡하는 사람들의 냉소와 불신은

오늘 우리 시대의 냉소와 불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사는 사회나 세상이든

자신의 인생이나 다른 사람에게든

또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나 신앙에 대한

냉소, 불신, 절망, 좌절과 같은 것들을

사람들이 왜 가지게 됩니까?

 

냉소, 불신, 절망, 좌절과 같은 것들이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이유는 모두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에서 비롯됩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현실이

야이로에게는 두려움과 절망을 가져다주었고

곡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사는 나라를 헬(hell)조선이라고 하고,

갈수록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절망적인 세상의 현실과 교회의 현실 때문입니다.

 

(가나안 교인은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을 일컫는

한국교회의 신조어입니다.)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보다

아부하고 줄서고 뇌물을 쓰는 사람이

성공하고 출세하는 사회 현실

 

부모의 부와 지위에 따라

자식들의 삶이 태어나면서부터

금 수저나 흙 수저로 결정되는 현실

 

교회의 모습을 보더라고

하나님의 공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세상과 너무나 닮아버린 암담한 교회의 현실

 

이런 세상과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등등

 

이 모든 현실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신앙과 냉소, 좌절과 절망에 빠져들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와 노후에 대한 불안,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인간관계,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빠듯한 삶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불신과 두려움, 절망과 좌절에 빠지기에

너무도 충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불신앙과 절망에 빠지기에

너무도 충분하고 당연하기에

오히려 더욱 믿음이 요구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는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음을 알리기 위해

곡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으시고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

도무지 어떤 소망도 믿음도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오히려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두려워하는 야이로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까?

 

가장 절망적인 현실이야말로

더욱 더 믿음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내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결코

현실을 외면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현실을 잊게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절망적인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때는

이스라엘이 오랜 시간 나라를 잃고

가장 큰 절망에 사로잡혔을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평탄할 때, 형통할 때, 승승장구 할 때

자라지도 성숙하지도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아무런 소망도 기대할 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과 현실에 놓였을 때

가장 많이 자라고 성숙하며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죽음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불신과 좌절 냉소와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