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수요일 아침묵상-홀로 기도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6:45-46 (표준새번역)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45 Immediately Jesus made his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on ahead of him to Bethsaida,
while he dismissed the crowd.
46 After leaving them,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to pray.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는
신앙의 성숙을 위한
매우 중요한 영성입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목사들마다 교인들마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다합니다.
하지만 모든 신앙행위가 그러하지만
특별히 기도는 그저 많이
그리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기도는
많이 그리고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기독교 신앙의 고질병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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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하는 기도의 모습이
정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못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 먹이시고는
돌려 보내셨습니다.
제자들도 배에 태워
벳새다로 먼저 떠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변 모든 사람들을 보낸 후
기도하시기 위해 홀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세 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마가복음 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왜 홀로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을까요?
대부분의 한국 교회 목사들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본받자며
교인들에게 기도할 것을 유난히 강조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교회 교인들의
기도에 대한 열심과 정성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교인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기도한다고 하면
수요 기도회나 금요 철야 기도로 모여
뜨겁게 찬양을 하고 통성 기도를 해야만,
그래서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야만
기도 좀 했다고 여깁니다.
과연 이런 식의 기도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원하셨던 기도일까요?
아니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나서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서 배워야 할 것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기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란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기도에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드리는 기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다양한 기도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기도생활을 대신해 버립니다.
물론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 드리고
함께 힘을 모아
이웃이나 공동체를 위해서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영적싸움과
영적성숙을 위한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드리는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기도에 있어
한국교회 교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래 그리고 자주
기도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기도를 오래 그리고 자주 하는 것이
문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내가 하는 기도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에 대해
한국 교회가 즐겨 사용하는 구호 중에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 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라고도 합니다.
얼핏 듣기에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인다니
대단한 믿음 같아 보이며,
대단한 기도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 또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 라는 표현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열심과 정성을 다한 나의 기도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마침내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런 확신과 믿음이
한국교회와 교인들로 하여금
1년에도 수차례씩
40일 특별 기도회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회에
많은 교인들이 열심히 참여하며
자신의 모든 정성과 노력을 바칩니다.
기도에 대한
교인들의 정성과 노력을 보면
목사인 제가 보아도
대단한 정성이고 노력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정성과 열심을 다해 기도하기 이전에
조금만 주의 깊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열심과 정성어린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자기의 소원과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가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신앙과 기도생활이
과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40일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던
100일 작정 기도를 하던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문제가 있습니다.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생각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일까요?
과연 이런 기도가
과연 기독교 신앙의 기도일까요?
정성과 노력으로 신을 감동시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것은
지극히 무속적인, 샤머니즘적인 생각입니다.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극한 열심과 정성으로 기도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장독대에다 찬물 떠다 놓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는 것이나,
서낭당 아래에 떡 가져다 놓고
기도를 드리는 것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기도는 기독교에만 있는 신앙행위가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는
어떤 형태로든 기도라는 신앙행위가 있습니다.
문명을 등지고 사는 원시부족들도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건강과 식량, 비, 자녀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기도를 드립니다.
불교신자들의 기도에 대한 열정은
다른 종교가 보여주는 기도의 열심을
훨씬 뛰어 넘을 만큼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마야나 잉카와 아즈텍 부족들이 드린
기도에 비하면 별 것 아닙니다.
이들은 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종교의 기도는
신에 대한 열심과 정성으로 신을 감동시켜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고 가르쳐주신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을 하나님께 드려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신앙은
사람이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와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정성에
반드시 보답해야 하는
매우 불순한 거래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정성스런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여
자신의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내 뜻과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배우고 깨닫는 영적 훈련입니다.
누가복음 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몸소 보여주신 기도는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통해 이루는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몸소 보여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며 살아왔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닫게 하여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길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기도의 순간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기도의 시간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닫고
깨달을 것을 위해 살아가는 용기를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