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금요일 아침묵상-이방여인의 믿음
마가복음 7:25-30 (표준새번역, NIV)
25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수로보니게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시기를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
28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아이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하였다.
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자신의 딸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에게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며
이방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셨습니다.
이방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에게
심한 굴욕감과 상처를 줄 수 있는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이방인들 역시 차별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는 듯한
모욕적인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 예수님께서도 당시 유대인들처럼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시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버리신 개라고
생각하신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정확한 예수님의 의도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는
이방 여인의 겸손한 믿음을 보여주심으로
유대인들의 교만과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여인에게 의도적으로
더 이상은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은
예수님의 모욕적인 말씀에도
어떻게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 초점을 두고 묵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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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람 수로보니게 출신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방 여인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딸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악한(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아마도 꽤 오래 전부터
귀신에 들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때 마침 이 이방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자기가 살고 있는
두로 지역에 오셨다는 소문이 전해집니다.
이방여인은 소문을 듣고 그 즉시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찾아 나선 것입니다.
당시 중동 문화에서는
아무리 다급한 일이 있다고 해도
여자가 남자를 먼저 찾아가 만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방 여자가
유대인 남자를 찾아가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이 한 것입니다.
어떻게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이
문화의 한계
시대의 한계
성별의 한계
종교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딸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과
예수님이라면 딸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으로 하여금
모든 한계와 장애를 뛰어넘게 만든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면한 어려운 장애와 한계를 핑계 삼아
그 어떤 변화나 노력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고통스런 현실에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은
딸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과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도무지 누구도 뛰어넘기 힘들 것 같았던
장애와 한계를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간절한 사랑과 확고한 믿음은
아무리 어려운 장애나 한계라고 할지라도
능히 극복하고 뛰어 넘을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방 여인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괴롭히는
악한 귀신을 쫓아줄 것을 간청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딸의 치유를 부탁했다는 것은
이방 여인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 여인은
예수님만이 자신의 딸이 겪는 비참한 고통을
치유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에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마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믿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누구보다 가장 잘 믿어야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가장 잘 믿어야 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귀신의 사역이라고 깎아 내렸고
예수님의 가족이나 친척들은
예수를 미친 사람 취급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조차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된 믿음이 있었는지
불분명하게 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을 직접 듣고 경험하고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세주)로 믿기는커녕
예수님의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의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반면에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기에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집니다.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매우 큰 방해와 장애가 있었음에도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집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도 가지지 못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딸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입니다.
엄마로서 딸이 겪는 고통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자 아픔입니다.
딸이 겪는 고통을
자신이 대신 받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기꺼이 딸 대신
그 고통을 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딸이 겪는 고통보다도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간절한 사랑에는
고통과 아픔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은
딸과 함께 고통과 아픔을 당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만듭니다.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는 순간
예수님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자신의 딸을 괴롭히는
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소망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방 여인에게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기에
여인이라는 한계와
이방인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기에
모욕적이고 차별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결국 딸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예수님에 대해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절실하고 간절한 믿음을 가지게 만든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간절하고 진실한 사랑으로부터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딸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야말로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으로 하여금
그 어떤 한계나 차별도 뛰어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장 위대한 믿음은
가장 진실하고 간절한 사랑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소망의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랑으로 인한
가슴 절절한 고통과 아픔이 없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소망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도
결코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절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치도 아니고, 여유도 아닌
절박한 삶에 대한
간절한 호소이며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로 하여금 신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진실하고 간절한 사랑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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